누군가와 평행선을 달리고 있나요? 황미경 사모의 아침의 쉼표 감동 칼럼 (영상 안주황)

누군가와 평행선을 달리고 있나요? 황미경 사모의 아침의 쉼표 감동 칼럼 (영상 안주황)

소통의 시대는 지금도 살아 움직입니다 대화가 소통의 전부였던 시대를 구전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다 활자 기술이 시작되면서 소통의 방식은 문자로 옮겨졌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 한 통은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방식은 더욱 발전해서 지금은 영상으로 소통하며, 더 나아가 오디오-비주얼(audio-visual culture)이라고도 하는 융합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책 ‘아침에 쉼표 1, 2권’을 보면 책을 눈으로 보면서도 귀로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 음악을 들으며 그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듣기와 보기의 지평이 융합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서로 달리하는 관점이 평행선이라면 소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공감을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누군가 하나는 틀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꼭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곁에 죄인 된 우리가 결코 있을 수 없는데 자녀 된 권세를 입게 된 것은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 평행선을 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자, 그렇다면 누가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서로의 의식의 범위와 이해의 장을 넓혀가기 위해 내가 먼저 공감이란 변화를 추구해보는 것은 어떠세요? 어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남편과 가벼운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냉랭해진 가운데 아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밥상을 차립니다 남편도 밥상 사이로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서로 말없이 어색한 식사를 마쳤습니다 아내가 그릇을 정리하고 방에 들어오니 남편이 방안 곳곳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어질러진 것을 치우는 몫이 곧 자신의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는 남편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도대체 뭘 찾고 있는 거예요?” 그제야 남편이 대답합니다 “이제야 당신 목소리를 찾았네”라며 멋쩍게 웃는 모습을 보다 아내도 실없이 따라 웃으면서 서로 화가 풀리게 되었답니다 사소한 갈등이 크게 발전해서 대립을 이룰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지요 누군가 먼저 보내는 미소가 다시 손을 잡게 되는 일을 만듭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상대가 먼저 다가와주기를 바라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분은 우리가 변화되기를 무작정 기다리시기만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죄 때문에 끊어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하나님과 다시 엮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의 잘못을 보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보셨습니다 먼저 다가와 주셔서 보여주신 사랑처럼 미소 먼저, 말 한 마디 먼저 어떠세요? 내가 한 발 먼저 다가감이 자존심 구겨질 일이 아니라 아름다운 용기, 더 좋은 마음입니다 아침에 쉼표, 황미경 사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