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파게티가 짜짜로니를 이길 수 없는 이유 #shorts

짜파게티가 짜짜로니를 이길 수 없는 이유 #shorts

많은 이들이 짜짜로니는 짜파게티보다 맛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짜짜로니는 삼양의 대표 짜장라면으로써 10년 이상을 장수해 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 라면이 과연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국내 라면업계 최고 브레인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삼양식품개발부에서 정말 그렇게 맛이없다면, 짜짜로니를 존속시킬 이유가 있었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맛의 비밀이 짜짜로니 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많은 대중들이 만만한 짜파게티의 맛 속에서 허우적거릴때 소수였지만 꾸준했던 짜짜로니의 매니아들은 어떤 맛을 즐기고 있던 것일까? 초기 짜파게티 광고를 기억하는가? 강부자와 아이들이 나와 '나도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로고를 외치며 주말 식탁에 모여앉아 까만 면발을 후루룩 거리던 그 광고를? 한편 짜짜로니 광고의 컨셉은 무엇이었는가? 다소 희화되어 본래의 의도가 가려지긴 했지만, 중국의 요리달인으로 분한 이경규가 묘기를 부리며 짜짜로니를 요리하여 홀로 고고하게 맛을 보는 것이었다 이제 감이 좀 오는가? 이 짜장라면계의 두 거봉은 일면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판촉대상, 광고전략, 추구하는 맛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개념에서 출발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차이는 두 라면의 뒷면에 쓰인 조리법을 비교, 대조해 봐도 눈치챌 수 있다 과연 짜짜로니가 지향하는 짜장라면의 맛, 두 라면의 조리법 차이가 무엇때문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2005년 9월 서울 신림동의 고시촌 우리는 25년간 라면장사를 했다는 한 아주머니와 13년간 점심을 짜장라면만으로 수햏해 왔다는 어떤 고시생을 만날 수 있었다 "까다로와요 솔직히 어떤 때는 좀 짜증이 날 정도로 그런게 매력이랄까?" 13년간을 점심식사로 짜장라면만을 고집해 왔다는 만난 장oo씨 (37세) 장씨는 짜짜로니에 대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카메라에 비유하자면 예민한 수동 카메라라고나 할까요? 유저의 특성과 실력에 많이 좌우되죠 뭐 그러다보니 맛이 있다는 말도 사실, 없다는 말도 사실이에요 하하하 솔직하게 하는 말인데, 세상 뭐 별거 있냐 만사 귀찮아질 땐 짜파게티도 자주 해먹곤 하죠 " 아직 어리둥절해 하는 취재자에게 그는 이리 와 보라며 짜파게티와 짜짜로니 하나씩를 꺼내든다 "그 라면의 핵심에 가장 스텐다드하게 접근하는 방법은 바로 뒤에 적힌 조리법을 보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곤 하지만, 진리란 대개 교과서적인데 있죠 " 짜파게티의 뒷면에 적힌 조리법은 다음과 같았다 1 물 600ml(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 더 끓입니다 2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버린 후 과립스프와 올리브조미유를 잘 비벼드시면 됩니다 3 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한편 짜짜로니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았다 1 물 500cc(종이컵 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야채스프를 넣고 냄비뚜껑을 연 상태에서 5분 30초를 끓입니다 2 끓인 후 물을 약 반컵 정도 남기고 짜장소스를 넣어 저어가면서 센 불에 약 1분 30초 이상 볶는다 3 소스량이 적당량 되면(약 2큰술 정도), 불을 끄고 맛있게 드세요 "어때요 감이 좀 오세요?" 장씨는 빙긋거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마지막에 볶으라는게 차이점인데 그건가요?" 난감해진 취재자 "그렇죠? 일단은 그게 차이지요 그런데 그 이상을 읽어내셔야 합니다 " 장씨는 여전히 빙긋거리기만 하고 대답에 뜸을 들였다 장씨의 설명은 이러했다 조리법이란 별게 아닌 것 같아도 라면의 개발자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론낸, 그 라면을 가장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또 사실 대다수의 라면들이 실제 그러하듯) 라면이란 대충 적당량의 물을 부어 면이 적당히 익으면 불끄고 먹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행간의 의미를 보셔야 합니다 짜파게티의 조리법을 보면요 언듯 보면 뭔가 특유의 조리법을 말하고 있는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무성의해요 끓여서 면 익으면 물 따라내고 대충 비벼먹으란 말을 괜히 늘려 놓은거죠 물 3컵 정도라는건 대부분의 라면에 공통입니다 600ml라고는 말하지만 사실 눈금달린 계량컵 가진 사람은 별로 없어요 컵으로라도 물 양을 잴 정도면 굉장히 성의가 있는 축에 속하죠 근데 집에 있는 컵들은 실제로는 사이즈가 제각각이란 말이죠 그런데도 그렇게 조리법을 써놓은 이유는, '사실은 애초의 물 양이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에요 따라버리면 그만이니까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버리란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스푼이 한두갭니까? 심지어 티스푼이나 군대에서 쓰는 포크스푼도 스푼 아닙니까? 물론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어찌됐든 완성된 짜파게티의 맛은 비슷하니까요 그게 바로 초딩들도 '나도 짜파게티 요리사'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이유지요 바로 그게 짜파게티의 대중적인 인기 비결이자 나름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 "맛의 층위가 중층적이고 고급요리일수록 조리과정에서의 미묘한 차이가 맛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강한 감미료, 설탕 폭격 등으로 맛을 낸 정크푸드일수록 조리과정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도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맛을 유지합니다 쉽고 빠른 요리, 바로 패스트푸드죠 각종 푸드 체인점의 중학생 알바도 인기 최고의 맛을 재현할 수 있는게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 "마지막에 '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는 문구는 그야말로 이런 패러다임의 화룡점정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채도 종류가 한두개가 아니지요, 게다가 생야채는 그 특유의 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곁들여 먹는 종류, 양에 따라 제품 고유의 풍미는 간데없고 맛은 중구난방이 됩니다 그런데도 상관 없다는 겁니다 대충 아무거나 곁들여 먹어도 난 모르겠다 라는거죠 아니면 왠만한 건 곁들여 먹어도 혀가 맛을 혼동하지 않을만큼 이 제품은 강한 맛의 밀도를 지닌다는 자신감일까요? 다른말로 하면 짜파게티는 중층의 섬세한 맛을 포기한 대신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밀도를 극대화하여 어디 내 놓아도 실패는 안하는 맛을 지향한다는 걸 겁니다 쉽게 얘기해, 인기많은 애들 과자의 레시피죠" 장씨의 설명에 취재자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 그럼 짜짜로니는 다르다는 건가요? " " 다릅니다 다르고 말구요 " 취재자의 질문에 장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 먼저 다르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우열이 있다는 그런 의미라기보다 장인철학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그런거라는 걸 밝혀둡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짜장라면에 집중하도록 하지요 " 장씨는 다시 두 라면의 조리법을 대조해서 볼 것을 요구했다 짜파게티 : 1 물 600ml(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 더 끓입니다 2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버린 후 과립스프와 올리브조미유를 잘 비벼드시면 됩니다 3 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짜짜로니 : 1 물 500cc(종이컵 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야채스프를 넣고 냄비뚜껑을 연 상태에서 5분 30초를 끓입니다 2 끓인 후 물을 약 반컵 정도 남기고 짜장소스를 넣어 저어가면서 센 불에 약 1분 30초 이상 볶는다 3 소스량이 적당량 되면(약 2큰술 정도), 불을 끄고 맛있게 드세요 " 짜짜로니의 조리법을 자세히 논하기 전에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갈게 있습니다 짜파게티의 두번째 문구 어미도 다시보면 흥미롭죠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이런 말투를 쓰는건 어떤 때죠? ' 뭐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걍 대충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 이런 느낌이 안 오세요? "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소한 어미 갖고 너무 비약하는 것 아닐까? 취재자의 의문제기에 장씨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 조리설명서는 누가 작성해서 내리는걸까요? 바로 제품의 개발진입니다 개발진 수장의 최종결제로 그 문구는 마케팅부나 기획부로 내려지게 되는거죠 모든 사람의 말이나 글에는 뉘앙스라는게 있습니다 그 뉘앙스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철학의 단초를 잡아 낼 수 있죠 물론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문구에는 다소의 수정이 가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잠깐 참고로 짜짜로니의 두번째 문구를 보실까요? " " 볶는다? 아! " 취재자는 외마디 신음을 내질렀다 " '볶는다' 입니다 '볶는다' 우습죠? 내내 '뭐뭐 합니다~' '하세요~' 하다가 대뜸 '볶는다' 라니요 이게 뭘까요? 왜 이런 어투가 툭하고 튀어나온 걸까요? " (본 시리즈는 KBS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의 나레이터 음성을 연상하시면 더욱 맛이 좋습니다) " 아시겠지만 이 '볶는다'는 것이 짜짜로니 조리의 핵심입니다 차차 종합적으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단 조리법의 흐름을 따라가 봅시다" 짜짜로니의 물 500cc는 짜파게티의 물 600ml보다 적은 양이다 게다가 정확한 양을 기하기 위해 '종이컵 3컵'이라는 알기쉽고 구체적인 설명까지 보충하였다 또한 얼핏 지나치기 쉽지만 '냄비뚜껑을 연 상태'에서 끓이라는 지시까지 보인다 " 맛성분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맛을 담보할 수 있는 적정 최소량의 물에 면과 야채건데기를 삶아서 버리는 물과 맛성분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냄비 뚜껑을 열게 되면 끓이는 동안 수분의 증발로 그만큼 버릴 물도 졸여지게 되지요 5분 30초라는, 초단위의 시간 지시는 강박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 " 개발진은 제품 하나를 위해 과연 몇천, 몇만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을까요? 면발의 삶아지고 맛이 배어든 상태, 남은 국물의 농도 하여튼 짜짜로니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500cc의 물을 정확히 재서, 뚜껑을 열고 정확히 5분 30초간 끓여야 한다는 거지요 근데 이게 끝입니까? 아니거든요 아직 준비단계였거든요 이제부터가 본선이지요 정확히 (종이컵) 반컵 분량의 졸여진 국물을 남기고는 볶아야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