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팽년선생유허 朴彭年先生遺墟 Memorial Site of Park Paeng-nyeon 대전광역시 기념물(구)제1호박팽년선생유허비 문화재자료제8호조선시대집터순절지

박팽년선생유허 朴彭年先生遺墟 Memorial Site of Park Paeng-nyeon 대전광역시 기념물(구)제1호박팽년선생유허비 문화재자료제8호조선시대집터순절지

박팽년선생유허 朴彭年先生遺墟 Memorial Site of Park Paeng-nyeon 종목 기념물 (구) 제1호 (1989년 3월 18일 지정) 면적 1,546 1m2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대전 동구 우암로 326번 길 28 (우) 34506(지번) 가양동 161-1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위치해 있는 조선시대의 박팽년 선생의 유허(遺墟)이다 또한 박팽년 선생 유허는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의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이 살던 곳이다 박팽년은 세종 16년(1434)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단종 복위 운동을 꾸미다 세조 2년(1456)에 처형되었다 죽은 후에 유림의 학자들이 선생의 집터가 없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현종 9년(1668)에 주춧돌을 모아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써서 비문을 세웠다 현종 13년(1672)에는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壯節亭)이라 하였다 ------------------ 박팽년선생유허비 朴彭年先生遺墟碑 Stele of Bak Paeng-nyeon 종목 문화재자료 (구) 제8호 (1989년 3월 18일 지정) 수량 1기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대전 동구 우암로 326번 길 28 (우) 34506(지번) 가양동 161-1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사육신 박팽년 관련 집터 유허비 순절지 유허비는 옛 선현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전하고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우는 비(碑)로, 이 비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인 최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1417~1456)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의 본관은 순천(順川)이고, 자는 인수(仁叟)이며,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호를 슬인(瑟人)이라 스스로 취금헌(醉琴軒) 으로 지었다고 한다 세종(世宗) 대의 집현전(集賢殿) 학사(學士)였으며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에 한 사람이다 박팽년 선생 유허는 충청남도 회덕현 흥농촌 왕댓벌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현종 대에 건립된 유허비가 비각(飛閣)에 남아있다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의 높은 절의를 기리어 충정(忠正)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유허비(遺墟碑)는 1668년(현종 9)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이 글씨를 쓰고, 둔촌 민유중(屯村 閔維中)이 전액(篆額)을 썼다 비문에는 박팽년의 약력과 유허비의 건립 배경 등이 기록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41㎝, 폭 59 5㎝, 두께 32㎝이며,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672년(현종 13)에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壯節亭)이라 하였으며 그 후 6·25 때 비각이 파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 중건한 것이다 유허비가 있는 곳에서 북으로 몇 보를 가면 박팽년이 지었다는 연못 정자 자리에 주춧돌이 몇 개 남아 있어서 500여 년 전의 자취를 살필 수 있다 그가 이곳에 거주한 기간과 선조들이 이주한 시기, 그리고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의 미비로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유허비를 통해 선생이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살았던 구체적인 장소가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우암로 더퍼리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박팽년이 당시 회덕의 명문가였던 은진 송 씨 송유(宋愉)의 별당(別堂)인 쌍청당(雙淸堂)의 당기(堂記)를 썼다는 사실과 그 내용이 송유(宋惟)의 향촌(鄕村) 생활을 소상히 적고 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그가 이곳에 상당 기간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취재 202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