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원인은 오히려 기독교 인격신의 불가능성을 증명한다"
놀랍게도, 수많은 기독교 변증가들이 제1원인을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신은 기독교 인격신의 논리적 불가능성을 함축적으로 증명한다. 왜냐고? 일단 라이프니츠의 우주론적 논증, 칼람 우주론적 논증, 미세 조정된 우주를 통한 설계 논증 등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 신은 모두가 하나같이 '제1원인으로서의 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1원인으로서의 신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 개념과 모순되거나 양립하기 힘들어 보인다. 제1원인으로서의 신은 부동의 동자이므로, 인간의 행위로 인해서 결코 영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이 아무리 기도하더라도 그 어떤 이에게도 결단코 응답해주지 않는 신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들 중 하나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결정적인 비판이 담긴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러한 신에게 인간은 기도할 수도 없고 제물을 바칠 수도 없다. 자기 원인 앞에서 인간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 수도 없고, 또 이러한 신 앞에서 그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춤을 출 수도 없다." - 『동일성과 차이』, 「형이상학의 존재-신-론적 구성들」, 마르틴 하이데거, 신상희 옮김, 민음사, 2000, p.65 인용. -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신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물론 나처럼 꼭 믿지 않아도 되는 무신론자가 되는 길도 있다. 그러나 꼭 믿어야 한다면?) 적어도 (양정규 목사님처럼) 제 1원인에 기대어서 증명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초자연적 신에 기대어서는 성숙한 신앙을 키울 수 없으리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잘은 모르지만, 차라리 폴 틸리히의 '궁극적 관심' 같은 개념으로 기존의 초자연적 신 개념을 대체하는 길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므로 신학적으로나, 종교학적으로나 훌륭한 통찰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얼마든지 좋은 아이디어를 말씀해주시기를 환영한다.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신론자의 길로 가는 가장 최선의 방법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에게 그 길을 강권하고 싶지만, 신앙 속에서 길을 헤매는 이들에게는 좋은 신학적 경로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