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한 하루
미국 정치학 교수 스콧 니어링은 반전운동에 나섰다가 해직되자 1932년 버몬트주 시골로 들어갔다. 니어링은 돌집을 짓고 밭을 갈고 과일을 키우며 소박하되 조화로운 삶을 일궜다. 그때 버몬트 숲 속에서 산 스무 해의 기록을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그는 100세 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음의 시간을 택했다. 그때까지 그가 지킨 생활철학이 있다. “하루 네 시간은 먹을 거리를 얻는 노동에, 네 시간은 친교에, 네 시간은 독서나 글쓰기처럼 자기를 돌보는 일에 쓰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나는 과연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2000년대 초 10억원이 넘는 개인 세금을 내고도 또 한차례 세무조사를 받고 있던 때의 일이다. 과거 내 개인재산의 경리 일을 맡아 처리해주던 여직원이 세무서 직원에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사장님 말씀입니까? 그분 아주 폐인됐어요. 더 이상 건드려봤자. 나올 것이 없을 거에요. 그러니 그만두는 게 나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벌고 또 수백억원을 날리는 것을 겉핥기로 나마 목격한 그 여직원의 눈으로는 폐인처럼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은퇴하기에는 조금 이른 40대 중반의 나이에 “내 성공적인 삶은 여기까지”라고 주위에 공표하면서 일체의 하던 것들을 모두 그만두고 48세의 나이에 파주 시골마을 헤이리의 전원적인 삶을 택했다. 버리고 비우고 포기하고 또 체념했다는 표현이 아마 적절할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진정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가 사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경제적 자유가 내게는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작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헝그리 정신도 빼앗아 갔다. 배부른 돼지 중에 철학자가 그렇게도 드물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작가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은 바로 ‘자본주의의 논리’였다는 사실에서 나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 시골생활에서 이제 내게 돈은 더 이상 성취의 대상이 아니었다. 돈에서 나는 아무런 흥분도 느끼지 못했다. 보다 많은 그리고 항상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내 주위의 친구들이 차라리 부러웠다. 3년간 400라운드가 넘는 골프도 즐겨 보았고, 30개국이 넘는 해외여행에 누릴 것은 다 누려 보았지만 돈과 골프, 여행, 사교 등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내게는 더 이상 추구할 삶의 목표가 남아 있지 않았다. 작가활동은커녕 행복은 고사하고 오랫동안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철학이 없는 은퇴후의 삶 역시 ‘지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다는 느낌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4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문화사업을 해야 하는 헤이리에서 미술품을 수집하다가 곁다리로 모은 영화자료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영화박물관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할 정도로 컨텐츠가 빈약한 상태에서 오픈 했지만 영화박물관에 오픈 첫날부터 몰려든 관람객들은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작은 규모의 개인 박물관임에도 2005년 첫해에만 6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다녀갔다. 대부분 젊은 층인 관람객들은 내게 삶의 숨겨진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3번씩이나 크게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 보았을 정도로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몰랐던,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보람 있는 삶의 발견이었다. 내 인생의 제2막은 그렇게 열렸다. 나는 이제 삶의 보람을 추구하는 방법을 안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잡담도 나누고 함께하는 삶을 배운다. 낮에는 다양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헤이리트릭아트뮤지엄을 운영하면서 뒷산의 정원을 손질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진돗개와 산책도 즐기며 말하는 앵무새와 사랑의 대화도 나눈다. 밤에는 주로 유튜브 동영상 작업을 하고 글을 쓴다. 나는 또한 죽음의 보람을 추구한다. 내 삶에 뭔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글이나 페북의 힘이되는 좋은글 그룹과 네이버 밴드 혹은 세미나를 통하여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잘해 주려고 노력한다. 나는 내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실패와 역경을 통해 터득한 ‘가치’들을 최대한 많이 전해주려 노력한다. 6 나는 의미 있는 삶에는 네 가지 꼭지점이 있다고 믿는다. 일, 사랑, 공동체와 그리고 진리다. 나는 진리를 추구한다. 단순히 그 말의 뜻 이상이다.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한 대가로 속물세상에서 여전히 써 먹을 수 있는 고단자로서의 내 능력과 모든 가능성을 포기했다. 욕망에 한계를 긋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 까지는 물론 내 집사람 소유의 박물관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 충분히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밑받침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집사람이 운영하는 박물관 살림과 용돈만 벌면 만사 형통인 내 주머니는 다르다. 물론 아직도 가치 있는 삶에 천착하는 내 집사람과 속물들의 세상을 떠나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나는 서로 철학도 다르다. 그리고 나는 무림의 고수가 전성기에 무림에서 쫓겨나지 않고 스스로 떠나서 사는 경우를 단 한 건도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와 보라. … 나는 그가 여전히 부와 권력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입증해 보일 수 있다. 나는 예전에 비해서 또 내 부자 친구들에 비해서 정말 가난하게 산다. 제발 가난뱅이의 편협한 시각으로 누릴 것 다 누린 자의 이야기라고 곡해하지는 마라. 서울에 나가는 일도 거의 없다. 쇼펜하우어의 조언대로 현자로 살기 위해서 나는 기꺼이 ‘외로움’을 택했다. 내 기억에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이렇게 적은 돈으로 살아 본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버리고 비우는 지혜를 깨닫게 되면서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풍요로움과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나는 앞으로 전진하고 더 많이 쓰는 것으로는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다. 거꾸로 후퇴하고 더 적게 쓰면서 나는 비로소 행복을 발견했다. 최소한의 것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고 지혜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안빈낙도(安貧樂道)가 따로 없다.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무욕의 신선처럼 산다. 철학자처럼 산보하고 사색하고 일하고 독서하면서 글을 쓴다. 법정스님의 잠언을 이해할 수준은 못되지만 스콧 니어링이 말하는 완벽한 하루는 즐길 줄 안다! 법정 스님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때’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는 결코 아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이다. 그때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가난하게 되돌아보인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나는 기가 죽지 않는다. 내가 기가 죽을 때는, 내 자신이 가난함을 느낄 때는, 나보다 훨씬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여전히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이다. . 채널운영자(성필원)는 무계획적인 사상가를 뜻하는 'kabbu'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스스로를 학문과 성공의 지혜를 결합시킨 최초의 세속 철학자로 칭한다.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다른 의미있는 삶의 철학을 추구하면서 그 결과물을 글과 강연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양처럼 살 것인가 늑대처럼 살 것인가』와『생존』, 『인간농장』,『정보브로커』,『인간농장』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내 안의 백만장자』와 『행동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직접 번역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20만명 ‘힘이되는 좋은글’ 같은 다양한 사이트들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