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현충사
#이순신장군 #현충사 #봄꽃 #아산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예전에 한참 김연아 선수가 잘 나갈때, 동계올림픽 피겨에서 금메달도 따고 이런저런 CF들도 많이 찍고, 나름 소신발언을 하고 하면서 한창 유행했던 단어중에 "까방권"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까임방지권'의 줄임말인데 김연아 선수가 워낙 인성도 좋고, 실력은 더 좋고, 국민들에게 동계올림픽 피겨사상 첫 금메달의 기쁨도 안겨주고 하다보니 어지간해서 김연아를 비난하거나 욕 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좀 많이 엉뚱하기는 하지만 오늘 현충사에 갔을때 순간 그런생각이 들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사실 우리 민족사를 통털어서도 매우 입지전적인 인물로 최고의 무인(공무원?ㅋ)이라는 평을넘어서 인류가 동경하고 이상향으로 우러러보는 가치와 용기를 가진 한명의 '인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가다가 이상한 말들로 충무공에 대해 얼토당토 않은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장군을 폄훼하고, 깍아내리려는 이상한 관심종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건 정말 정신이 좀 이상한 매우 극히 일부의 행태고 우리민족 뿐만아니라 전세계 대부분 충무공 장군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있는 사람들이라면 장군을 존경하고 있지않을까 싶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에게 그리 호되게 당했던 일본에서도 이순신장군을 깊히 존경하고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다고 하니 더 말 할것도 없지않을까 싶다 나를 넬슨 제독과 비하는것은 가능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것은 감당 할 수 없다 일돈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 그러다보니 현충사길을 걸으며 다소 엉뚱하지만 이순신장군이야 말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세 "까방권"을 가진 거의 유일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 역사적으로 유명하고 이름난 사람들도 한두가지 정도는 뭔가 "깔" 만한게 있는데 정말이지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그런 "꺼리"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자신보다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을 구해낸 영웅이고, 뛰어난 무기 개발및 설계했던 뛰어난 기능장(?) 이었으며 전시에는 난중일기라는 역사적으로 귀중한 기록을 남기 문장가(?)로 써 ㅋㅋ 최고였던 사람이지 않나 싶다 근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보면 어쩌면 그런 장군을 가족들은 조금은 "섭섭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요즘시대 시각으로 보면 아이들은 아빠를, 부인은 남편을 나라에 뻇긴게 되는거니 ㅎㅎ) 암튼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며 현충사를 다녀왔다 현충사 전체적으로 무척 관리도 잘 되어있고, 봄꽃들도 막 피어나면서 풍경을 더해 여유있게, 즐겁게 잘 다녀왔다 현충사 내부나 고택등에 정말 거미줄 하나 없이 깔끔하게 관리되는걸 보고 관리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현충사는 1706년(숙종32)에 아산지역의 유생들이 세운 사당이라고 한다 1707년에는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간판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에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기도 했으나 1931년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현충사를 지키기 위한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으로 1932년 6월에 현충사를 다시 세우게된다 1966년부터는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고 지금의 현충사를 다시 세웠다 해마다 충무공이 태어나신 4월 28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현충사에는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고 후에 본받게 하기 위한 편액을 조정에서 내려주는 '장려'가 있다 (충무공을 기리는 곳이니 너무나 당연하다 ) 이 장려는 충무공과 조카인 이완, 4대손 이홍무, 5대손 이봉상을 포함한 총 다섯분의 충신들이 모셔져있다 현충사에 가면 충무공께서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딸과 21세에 혼인하신후 32세에 무과 급제할때까지 살았던 고택이 있다 집 앞쪽으로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서있는 활터가 있고 (입장객 체험 가능ㅎㅎㅎ) 뒤쪽으로는 충무공의 신위를 모신 가묘도 있다 아산쪽으로 갈 일이 있다면 현충사는 빼먹지말고 꼭 방문해야 한다 (추천추천) 그리고 지금보다 더 크고 더 넓게~ 더 웅장하게!!! 증축하자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