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4 ◆♣● (1783) [화순옹주 홍문] 정빈이씨, 예산, 정조 △ 24/04 * 토요일, #04/13

#2704 ◆♣● (1783) [화순옹주 홍문] 정빈이씨, 예산, 정조 △ 24/04 * 토요일, #04/13

#2704 @ (#0501 - A 추석기차여행 [H] 조선의(1-15)왕비) (왕비) @ (#0502 - A 성심당 [H] 조선의 왕릉) (왕릉) (#0503 - 가람아파트, 조선의(16-27)왕비) @ (#0505 - A 가정의례보감 [H] 조선의왕) (조선의왕) @ (#0627 - A 경복궁 광화문 흥례문) (서울의궁) (#0940 - 문정전 창경궁, 사도세자) ◀ (추사고택 전체보기) (고고회 전체보기) (서울의궁 전체보기) 화순옹주 홍문 ● 화순옹주 (和順翁主) 는 (1720 ~ 1758) 영조의 서녀로 영조의 둘째딸 이다 어머니는 정빈이씨 (靖嬪李氏) 이다 사도세자의 어머니는 영빈이씨 이다 1732년 영의정 김흥경 (金興慶) 의 아들인 월성위 김한신 (金漢藎) 과 결혼하였다 남편이 죽자 음식을 끊고 14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자신의 뜻을 저버린 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정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1783년 (정조 7) 에 정조가 화순옹주가 살던 마을 어귀에 열녀정문을 세우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화순옹주는 자수를 아주 잘 놓았는데, 하루는 아버지의 곤룡포를 만들었다 옹주는 곤룡포를 완성한 뒤에 어떤지 품을 보려고 남편 김한신에게 입어보게 하였다 그런데 김한신이 임금만이 입는 곤룡포를 입은 모습을 본 사도세자가 격분하여 옆에 있던 벼루를 들어 김한신을 내리쳤다 이로 인해 김한신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옹주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과 사도세자에 대한 원망을 품고 굶어죽은 것으로, 영조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다 그런데 명당이라는 용산 앵무봉 아래에 장사 지내려고 땅을 파니 물이 콸콸콸 쏟아졌다 당연히 묫자리로 쓸 수 없었는데 김한신 집안에서 이 자리가 3대에 걸쳐 판서가 나올 자리라고 고집하여 200자 떨어진 곳의 땅을 다시 팠다 다행히 물이 빠져나가 명당에 화순옹주의 묘를 쓸 수 있었고, 연못이 생긴 자리는 왕자지 (王子池) 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지역에 전해진다 왕자지 연못은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한다 ● 영조 (1724 - 1776) : 원릉 - 구리시 동구릉 정성왕후 서씨 : 홍릉 - 고양시 서오릉 정순왕후 김씨 (원릉) 정빈 이씨 효장세자, 진종 : 영릉 - 파주삼릉 영빈 이씨 : 수경원 - 고양시 서오릉 ☆ 장헌(사도)세자, 장조 ☆ 00 진종 (효장세자) : 영릉 효순왕후 (영릉) 00 장조 (사도세자, 장헌세자) : 융릉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 ☆ 의소세손 : 의령원 정조, 22대 왕 ★ ● 정조 (1776 - 1800) : 건릉 - 경기도 화성시 효의왕후 김씨 후궁 원빈 홍씨, 화빈 윤씨 궁녀 창영 성씨 문효세자 : 효창원 수빈 박씨 순조, 23대 왕 ★ ㅡㅡㅡㅡㅡm ㅡㅡㅡㅡㅡR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