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부산 이바구길, 168계단 층층이 서린 애환…‘부산의 속살’을 만지다](https://krtube.net/image/SdVRk5Ws9_s.webp)
[경향신문] 부산 이바구길, 168계단 층층이 서린 애환…‘부산의 속살’을 만지다
해운대와 태종대, 광안리…. 한여름 부산은 사랑과 젊음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도시다.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면 부서지는 파도에 몸을 내던질 수 있는 바다가 있고, 멀리서 뱃고동 울리면 새벽보다 먼저 깨어나는 자갈치 시장이 있다. 이 매력적인 도시 부산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곳들이 있다. 갯내음보다 진한 사연들을 바다로 풀어놓는 무수한 골목들. 이야기의 시원을 찾아가듯 타박타박 걸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만져지는 것들이 있다. 부산의 속살이다. ■산허리를 가로 지르는 집 “산복도로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도시 촌것’에게 ‘산복도로’는 이름부터 낯설다. 바다 말고 색다른 부산을 보고 싶어 여행전문가들에게 코스 추천을 부탁했더니 돌아온 답이 “산복도로”였다. 산복은 한자로 뫼산(山), 배 복(腹). ‘산허리나 산중턱을 가로 지르는 길’이다. 일단 하룻밤 머물 숙소를 찾았다. 부산 동구 산복도로에서 맞춤한 곳을 발견했다. 초량동 게스트하우스 ‘이바구 충전소’에 짐을 풀었다. 초량동은 부산역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동네다.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산복도로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봐야 진짜 부산이지예.” 부산관광공사 장지혜 대리가 “바다를 메워 지금의 부산역이 만들어졌다”며 횡단보도를 건너자고 했다. 주로 항구 주변에 형성되는 차이나타운과 텍사스타운이 왜 부산역 인근에 있는지 알만했다. ‘이바구’는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라는 뜻이다. 산복도로 중에서도 초량동 이바구길이 유명하다. ‘168계단’ 때문이다. 계단을 올려다보면 그 경사도에 놀라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경사가 60도는 돼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건 없다. 이달부터 모노레일이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걸어서 오를 것인가, 모노레일을 탈 것인가. 이 더운 날, 왜 굳이 힘들게 계단을 올라?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몸은 모노레일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모노레일은 공짜였고 2분 만에 가뿐하게 ‘정상’에 올랐다. 저 멀리 부산역이 손에 닿을 듯했다. 산 아래 바다가 보이고 부산 시내도 조망할 수 있다. 동네는 조용했다. 가끔 차가 지나갔고, 간혹 마실 나온 어른들이 보일 뿐 한적했다. 산복도로와 이바구길의 사연을 알지 못하면 산중턱에 숙소를 정한 걸 후회할지 모른다. 산복도로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터를 잡은 산동네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항구에 배가 들어오거나 부산역에 기차가 도착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앙상한 뼈마디에 등이 굽은 아버지들은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한달음에 168개 계단을 ‘달렸다’. 짐을 싣고 내리는 지게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남보다 먼저 도착해야 일거리가 생겼다.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이 가파른 계단을 뛰어 내려간 아버지들, 해질 무렵 연탄 2장과 쌀 한 됫박을 손에 들고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오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산복도로는 동서남북으로 큰 길이 16.8㎞이지만 구석구석 얽히고설킨 골목들을 더하면 30㎞를 훌쩍 넘는다. 산복도로에는 아리고 저린 삶과 이야기들이 그렇게 굽이굽이 이어져있다. 〈부산 | 글 정유미·사진 강윤중 기자 ‧ 영상 유명종 PD [email protected]〉 경향신문 홈페이지 http://www.khan.co.kr/ 경향신문 페이스북 / kyunghyangshinmun 경향신문 트위터 / kyunghyang 스포츠경향 홈페이지 http://sports.khan.co.kr/ 스포츠경향 페이스북 / sportkh 스포츠경향 트위터 / sports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