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주일예배

2024년 9월 22일 주일예배

요엘2장 28-32절 젊은이는 이상을 볼것이며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한국의 청년들은 지금 출구 없는 골목에서 아무런 보장이 없는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대학진학률은 최근 몇 년간 70%가 넘는데, 대학졸업자들의 취업률은 50%를 가까스로 넘고 있습니다. 그나마 취업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니까 이 취업률에는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까지 포함된 수치라는 것입니다. . 그나마도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이고 구직 포기자나 취업 기피용 진학생까지 포함하면 취업률은 더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안정적인 직업군인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대학생들 청년들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실정인것이지요그래서 요즘 대학생들의 삶은 그 야말로 취업준비생의 삶입니다. 대학에서는 일부러 F학점을 취득하려는 학생들까지 있다고 합니다. 졸업을 미루고 계속 취업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들 있습니다.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라 이를 위해서 온갖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을 감수해야 합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에 진학해도, 청년들은 또다시 취업경쟁에 뛰어들면서 사적인 연애나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을 통해 전망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미래상은 암울하다고 전망합니다. 헨리 지루(Henry A. Giroux)는 이런 청년들을 가리켜 ‘1회용 청년’(disposable youth)이라고 칭합니다. 그는 지금 사회가 청년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청춘이 일회용으로 전락하거나 적어도 잉여처럼 취급”당하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기성세대와 정책입안자들이 청년들을 사회적 쓰레기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골치아픈 존재이지 미래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청년’은 불안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청년이라는 말에는 무거운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홀로 서겠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은 부모에게 의존해 왔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고, 인생의 지혜와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것들을 기초석과 디딤돌로 삼아 독립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모의 정신적인 세계에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고, 물질적인 세계에서도 독립하고자 하는 시기가 청년의 시기입니다. 물론 홀로서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원하는 것이 청년의 마음입니다. 만약 청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부모님만 졸졸 따라간다면 부모님은 걱정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릅니다. “얘야, 이제는 너 혼자 서 봐라. 너 혼자 걸어보아라. 네가 청년의 나이가 아니냐. 내가 너를 도와주기는 할 테지만, 이제는 너 스스로 결단하고, 네 손과 발을 움직여서 너의 삶을 만들어 봐라.”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청년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언가 모험을 하기에는 자신이 작아 보입니다. 배우고 배워도 배운 것이 모자라고,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청년들은 여러 면에서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다른 한 편으로 거대한 장벽에 붙들려 있는 현실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많은 것을 향해 가려고 하면서도 자꾸만 고민하고 고뇌하게 되는 것이 청년입니다. 청년의 시기는 고민과 고뇌가 참 많은 시기이고 신앙이 가장 깊이 성숙하는 시기이기도 하면서 또 신앙이 한없이 무너지기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요엘은 젊은이들이 이상을 봐야한다면 그렇게 외쳤는지 모릅니다. 청년에 대한 이야기는 전도서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1:9-12:1) 요엘서는 젊은이들 즉 청년들이 이상을 볼것이라고 외치는데 전도서는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외칩니다. 이 둘의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인 것 같지만 결국 깊이 통찰해 보면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더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요엘서의 말씀처럼 젊은이들이 이상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올때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자녀들이 예언을 하며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를 이상을 보는 것이라고 정리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이상을 본다고 했는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