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_백난아,이미자,주현미,양지은,정서주,LPG
찔레꽃_ 백난아(1942년) 백난아(1991년) 이미자(2005년) 주현미 양지은 정서주 LPG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노래가 발표된 지 벌써 77년이 지났지만 백난아의 '찔레꽃'은 KBS 가요무대 역사상 가장 많이 불린 노래로 선정될 만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 온 노래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극에 달하던 1940년대 초, 혼돈의 시기에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레코드예술상-신인가수대항 콩쿠르에서 '오금숙'이라는 이름의 젊은 신인 가수가 입상하게 되고, 심사위원이었던 김교성, 이재호, 백년설 등의 선생님들은 신인 가수와 함께 음반작업에 착수합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태평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 계약을 하면서, 백년설 이 본인의 성을 붙여 양딸로 삼고 이 가수에게 예명을 주게 되는데 바로 '백난아'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당시 백년설이 보시기에, 백난아의 이미지가 난초같이 청초하고 순수한 느낌이었을까요 데뷔곡 '오동동 극단'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 '갈매기 쌍쌍', '망향초 사랑', '아리랑 낭낭' 등 많은 곡들을 히트시키게 됩니다 해방 전까지 태평레코드의 전속 가수로서 많은 인기를 얻다가, 해방 후에는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하며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고 1949년부터는 럭키레코드와 계약을 하면서 '낭랑 18세'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찔레꽃'은 발매 직후에도 인기를 끌었지만, 광복 이후 또 6 25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찔레꽃 #백난아 #이미자 #주현미 #양지은 #정서주 #L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