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진 나루터
사문진 나루터는 옛날 보부상들이 부산 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오는 뱃길 로 이용되었다. 사문이라는 이름의 유래 는 '화원읍 본리리에 있었던 인흥사라는 큰절로 가는 관문 이기 때문에 절사를 써 사문진 으로불렀다.'는 설과 '강가의 모래가 있어서 사자를 쓰고 포구를 통해서 배가 소금 등을 심고 들어오고,이 지역의 물건이 다른 지방으로 가는 문이라 해서 사문진 으로불렀다.'는 설 2가 지로 전해 오고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조선 세종 28년에 설치돼 성종때까지 4 0년간 무역 창고(화원창)지로 활용되었 으며, 이 곳에는 대일무역의 중심지 역할 을 한 왜물고가 있었으며, 낙동강 물자 수송의 중심지 역활을 하였다. 1900년 3월 26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 보텀 부 부가 피아노를 한국 최초로 이곳을 통해 대구로 가져 왔으며, 일제강점기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 촬영지였다. 현재의 모습은 1993년 화원읍과 고령군 다산면을 잇는 사문진교가 개통되면서 사문진 나루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으나, 피아노 광장을 조성하고, 전통 주막촌 3동을 복원하는 등 사문진 나루 터 일원에 역사 공원을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