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획 ⑨ -목포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 (CTS, CTS뉴스, 기독교방송, 기독뉴스, 기독교뉴스, 교계뉴스)
앵커: CTS 뉴스에서는 3 1운동 백주년을 앞두고 3 1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와 지역, 단체들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목포와 당진이야기를 준비했는데요 먼저 목포는 대한민국 개항기 선교사들의 기독교 선교의 전진기지였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세워져 호남지역 기독교 선교의 구심점 역할을 맡은 목포양동교회와 1919년 목포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정명학교까지 항일운동으로 신앙을 지켜온 목포지역 기독교 항일 운동역사를 소개해 드립니다 윤희준 기자입니다 전라남도 목포는 1897년 10월 1일, 부산과 인천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한 근대화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목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치되고 호남 곡창지대의 수 많은 재화들이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등 일제 수탈의 창구로 변모했습니다 int 김양호 목사 // 목포기독교역사연구소 한편 목포는 지리적 특성상 내륙과 도서지역을 오가며 선교활동을 하기에도 유리한 위치였습니다 때문에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기독교 선교활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개항기 외국 선교사들은 교회를 비롯해 학교와 병원을 세워 근대화에 일조했으며 그 가운데 1903년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는 목포정명여학교를 설립했습니다 특히 정명여학교는 1919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3 1만세 운동이후 목포에서 펼쳐진 3 21만세운동과 4 8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int 정종집 교장 //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1898년 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은 목포 양동에 임시사택을 짓고 한국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목포양동교회의 출발이었으며 8대 담임목사인 이경필 목사를 비롯한 교인들이 같은 선교 구내의 정명여학교, 영흥학교 학생들과 함께 1919년 3월 21일, 비밀리에 만세 시위를 준비했으며 같은 해 4월 8일, 더 큰 목포 만세운동을 전개했습니다 int 최병기 목사 // 목포양동교회 또한 양동교회 10대 담임목사였던 박연세 목사는 일제의 황민화 정책과 천황 숭배 및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여 1944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 순국했습니다 양동교회는 전라남도 최초의 교회이자 호남 최초의 자립교회라는 상징성 뿐 아니라 목포지역 만세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일제 강점기와 6 25전쟁 등 민족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로서 의미도 뜻 깊습니다 int 최병기 목사 // 목포양동교회 int 김양호 목사 // 목포기독교역사연구소 목포지역 가운데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그 길을 걸으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생명과 소망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CTS뉴스 윤희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