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커피, 맥주, 와인문화가 없었던 이유는 맑고 단 물 때문 #shorts

녹차, 커피, 맥주, 와인문화가 없었던 이유는 맑고 단 물 때문 #shorts

#shorts #녹차 #도자기# 홍차#커피# 맥주#와인 #KoreanHistory 황토, 사막. 자갈밭(고비). 석회암(유럽) 등에는 맑은 물을 항상 마실수는 없었다. 우리차(茶)와 일본다도(茶道) 우리나라 차의 시작이 정사(正史)에는 신라 흥덕왕 때인 9세기경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미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일본 차도의 시원은 쇼오토쿠태자(7세기초) 시대로 올라가지만 기록으로는 8세기 초 백제의 도래승 교오키(行基)가 처음 전해주었다는 것이 오다이사 사지(寺誌)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다도는 일본 특유의 형식미와 만나 이른바 까다로운 형식을 갖추었는데, 14~15세기 경에 성립됐다. 일본의 다도는 차를 끓이는 법과 마시는 법 등 그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형식의 완성을 통해서 정신을 구현한다는 일본의 정신문화는 이 다도를 보면 잘 알 수가 있다.일본의 다도는 15세기 중엽 센노리큐(千利休)의 등장으로 성립된 '와비차'로 까다로운 형식에서 벗어나 점차 대중화 되어갔다. 또한 다도의 확립과 열기는 필수적으로 다기로 사용된 도자기 문화를 꽃 피우게 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 혹은 ‘차 전쟁’이라 부르고 있는 것은 차와 연유된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차를 애용했는데 오오사카성을 쌓았을 때도 성 안에 황금의 다실을 만들었으며 전공을 세운 장수들에게는 차와 다기를 선물로 내리곤 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른바 차 문화가 없다. 고래의 백산차(白山茶)에서 시작하여 , 차의 역사만 하더라도 멀리는 삼국초(三國初), 가까이는 8세기경에 시작하여 일본에 차를 전해줌은 물론 다기마저 전해주었다. 또 도공들이 다기를 제작하는 기술마저 전해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남은 것이 별로 없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차 마시는 일은 고려 때만 해도 생활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고려의 멸망과 함께 불교가 쇠퇴하고, 그에 따라 차 풍습도 사라지고, 불가에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 본래 차의 발달이 탁한 물을 그대로 마시는 대신 음료로 사용하는 데서 기원하듯이 달고 맛있는 양질의 물을 가진 우리에겐 차의 필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유교의 발달과 그에 따른 제례양식을 술로 대신함으로써 차는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 차의 원형을 알기가 힘들게 되었고 오히려 일본 차의 많은 것을 흉내내고 있는 실정이다. 1982년에 일본을 배낭여행하고 난 후에 집필을 완료하고, 몇 년 후에 일본기행을 출판했다. 그리고 40년 만인 2022년에 전자책을 다시 출판했다. 그 책의 일부 내용이다. 윤명철, "일본기행--한국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