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하여] "방언을 받을 때 왜 굳이 '할렐루야'를 반복해야 합니까?"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나 무엇과도 주님을” 링크 : • [Vol 14]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CCM 피...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얼마 전에 한 분이 방언에 대해 이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저의 방언은 ‘랄랄라’로 시작되었는데 어떤 분은 방언을 받으려면 할렐루야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건 뭘 뜻하는 것인지요?”라고 말입니다. 또 몇 달 전에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목사님, 제가 누군가에게 방언을 받고 싶다고 말을 했더니 그 분은 저에게 할렐루야를 반복해서 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방언을 받을 때 왜 굳이 이렇게 할렐루야를 반복하라고 합니까?”라고 말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와 연관하여 우리가 방언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저는 오래 전에 성령의 임재 체험을 하면서 방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한 교회에 방문을 하여 철야 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제 눈앞에 영화 스크린 같은 것이 펼쳐지더니 제가 살아오면서 지었던 죄들이 보였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고등학생이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겠습니까? 그런데 아주 사소한 죄까지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영상에서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만, 다섯 살때 쯤 옆집에서 빈병 두 개를 훔쳐 엿 바꿔 먹은 것까지 보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저의 죄에 대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갑자기 혀가 꼬이는 느낌이 들면서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랄랄랄라...랄랄랄라”하며 방언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방언을 받게 될까요?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방언에 대한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방언은 성령님이 임하실 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오순절마가다락방에서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령의 임재하심과 함께 이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행2:4, 새번역]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또 사도 바울이 사람들에게 기도를 했을 때,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까? 이때도 역시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까?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행10:45-46]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방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방언은 성령님이 임하신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 방언이 성령님이 임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방언을 못하는 나는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은 걸까?’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어떤 경우에 방언을 받지 못하는지 또 어떤 경우에 어떤 과정을 거쳐 방언을 받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제가 처음 신앙생활을 했던 교회는 방언도 은사도 인정하지 않던 교회였습니다. 은사나 방언은 초대교회 시대에 끝이 났고 지금은 이러한 것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에 다녔던 제가 어떻게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느냐? 저는 친구와 함께 어떤 교회에 철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철야 예배는 밤 11시에 시작하여 5시까지 드려졌습니다. 친구와 함께 처음 철야 예배에 참석했을 때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데 너무 시끄럽게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것이 통성기도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 제가 다녔던 교회는 소리 내서 기도하는 교회가 아니었기에 이렇게 시끄럽게 기도하는 것을 보며 ‘교회가 무슨 시장통인가’라며 거부감이 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귀가 머셨나? 속으로 기도해도 하나님이 다 들으시는데, 굳이 이렇게 시끄럽게 기도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이상한 말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말도 영어도 아닌 이상한 말로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말로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몇 주 더 철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상한 말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저런 언어로 열정적으로 기도해 보고 싶다’라는 사모함이 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었느냐? 성령님의 강한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혀가 꼬부라지면서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랄랄랄라”하며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나중에 이것이 방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방언은 어떨 때 나타나게 되느냐? 방언은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곳이 아니라 사모함이 있는 곳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성령님이 임재하실지라도 만약 그 사람에게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거부감이 있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방언이 나타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교회나 신학적인 것을 통해 계속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로 인해 제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면 성령님이 임재하셨더라도 저에게 방언이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저는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방언을 강하게 사모했으므로 이것을 통해 방언이 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방언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누군가가 방언에 대해 거부감이 있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방언이 임하는 것이 제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방언에 대해 사모하며 갈망하게 된다면 이런 분에게는 방언이 쉽게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방언에 대해 알아야 것은 방언은 “기도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돕기 위해 주시는 기도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기도하지 않으면서 방언을 받고자 한다면 이런 분에게도 방언이 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기도를 돕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쉽게 방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방언에 대해 사모함과 갈망이 있다면,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방언에 대해 사모함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어떤 분들은 이렇게 기도할 때 할렐루야를 반복해서 기도하라고 하느냐? 여러분 방언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이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집중해서 모국어인 한국어로 기도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기도의 우선권이 한국어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혀에 대한 우선권은 영이 아니라 혼에 있게 되므로 우리가 한국어로 집중해서 기도하게 된다면 영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내가 내 혀를 붙잡는 의지를 분산시키기 위해 “할렐루야”나 할렐루야를 거꾸로 반복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내가 내 혀에 집중하는 것이 약해지므로 방언이 쉽게 임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분들은 방언을 받고자 한다면, 할렐루야를 반복해서 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방법은 그리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방언은 쉽게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방언을 인위적으로 받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또 방언의 귀중함이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에 방언에 대한 강한 사모함을 품고 성령님께 방언을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합니다. 보통 이렇게 20분 정도 기도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방언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한 사모함을 가지고 기도할 때 방언을 받게 되므로 방언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 방언은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돕기 위해 주시는 기도의 선물입니다. 또한 방언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주시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방언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면, 방언의 임재하심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가운데 방언을 받고 싶은 분이 있다면, 먼저 방언에 대한 열린 마음과 사모함을 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성령님이 우리의 사모함을 통로로 하여 방언을 우리에게 부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