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방위대'라던 미국 국방부가 베트남전쟁을 한국특수부대에게 통째로 맡기려던 이유 “한국군과 1:1은 절대로 피할 것!”
[광고 문의] 디씨멘터리 채널과 광고 협업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이메일로 문의해주세요 dcmentary@naver com '지구방위대'라던 미국 국방부가 베트남전쟁을 한국특수부대에게 통째로 맡기려던 이유 “한국군과 1:1은 절대로 피할 것!” #강철부대 #베트남전쟁 #한국특수부대 베트남전이 발발한 이유는 1964년 ‘통킹만 사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은 중국과 소련 등 사회주의국가가 제3세계에서 전개하는 민족해방운동은 “미군에 대한 정면도발”이라면서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위해 1962년까지 11,000명이 넘는 비전투 군사요원들을 베트남으로 파견했는데요 그리고는 이들에게 “만약 적군이 공격한다면 이에 대응해도 좋다”면서 사실상 교전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다 1964년 8 , 미 해군 구축함이 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초계정으로부터 공격받게되자 이를 계기로 미국의회는 베트남전 참전하도록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케네디 후임으로 들어선 존슨 대통령 행정부들어 실제 참전이 이뤄졌는데요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과 러시아와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구축한 첨단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베트남에 참전 중이던 미군들은 돈과 무기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매일같이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죠 심지어는 술을 마신 상태로 헬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군들에게 이 베트남전은 지옥과도 같은 특이한 전쟁이었습니다 왜냐면 이제까지 미군은 단 한 번도 정글에서 싸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사막의 폭풍과 같은 거대한 군사작전이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전은 또 다른 한국전쟁이었다고 말하지만 '인천상륙작전' 직후 38선 이북으로 진격했던 것과는 달리 북베트남으로의 진격이 없는 고요한 전쟁이었습니다 여기에 정글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미군들에게 지옥이었죠 미군이 치른 대부분의 작전은 정글에서 베트콩을 찾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베트콩을 쉽게 찾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호치민 서쪽의 '구찌' 지역에는 당시 베트콩이 생활하고 작전했던 땅굴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에는 수십명의 베트콩이 땅 밑에서 생활하기 충분한 공간이었습니다 터널을 찾거나 베트콩을 찾거나 하는 수색작전에서 미군들은 지쳐만 갔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베트콩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항상 머리칼이 곤두서는 경계태세를 유지해야했죠 부비트랩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베트콩을 목표로 미군이 설치한 부비트랩들은 베트콩들에 의해 다시 설치되었고 이는 정글에서 수색작전을 펴는 미군들에게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극한의 스트레스 때문에 미군에서는 무려 6만 5,000명이 넘는 탈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미국이 결국 우방국들에게 참전을 요청하게 됩니다 한국도 미국의 우방이었죠 결과적으로 한국은 1차에 의무병과 태권도 교관 등 비전투요원 140명을, 2차에 비둘기부대 2,000명을 대민지원으로, 그리고 3차부터 전투부대가 파병됐는데요 파병요청을 받았을 당시 가난함 탈피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경제발전에 이용하기로 결정합니다 즉, 미국을 방문해 존슨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전투병력을 파병해주는 대가를 달라고 한 겁니다 결국 이 방문으로 한국은 식량, 물자, 기술, 자금을 지원받기로 합의가 됐죠 그런데 한국이 보낸 파병부대는 평범한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전투 특수부대로 구성했죠 해병대의 청룡부대, 육군의 맹호부대, 백마부대, 은마부대, 십자성부대, 백구부대 그리고 현 특전여단으로 바뀐 공수지구대까지 파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파병 직후부터 ‘전쟁의 신’이라 불리며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짜빈동 전투’는 한국의 활약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는데요 그 전까지 한국군을 우습게보면 미군들의 인식을 바꿔놓기도 한 결정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월남전에서 해병대 청룡부대는 '파이어 베이스'라고 불리는 중대전술을 폈는데요 파이어 베이스는 동서남북 사방을 쉽게 방어할 수 있도록 원형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구축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대 간에 서로 폭격을 지원할 수 있는 진지를 짓고, 적의 폭격에 대비한 호를 파놓습니다 한 호당 2~3명이 허리만큼 들어가도록 파두고는 각 호를 거미줄처럼 연결해놓는 전술이죠 그리고 그 안에는 박격포, 탄약, 식료품 등을 보관하고는 밖으로는 윤형철조망을 비롯한 혼합형철조망을 설치합니다 여기에 각종 지뢰를 설치해 완전요새를 구축하는 겁니다 물론 이 전술의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습니다 공중폭격에 취약했다는 점 그리고 적군이 이 파이어 베이스를 고립시키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이었죠 그러나 당시 공중은 미군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기때문에 월남전에서는 가장 최적화된 방어진지였죠 이 파이어 베이스를 두고 미군들은 무슨 전쟁에서 중대전술이냐고 비아냥대면서 연대 또는 대대로 편성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 전술의 진가가 발휘된 전투가 바로 '짜빈동 전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