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길입니다(엡6:1-4) 광명소망교회 고현석목사
진리는 길입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은 의미상으로 동의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분명코 동의어가 아니지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어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3:6 새번역). 진리가 길로 보이고 생명으로 느껴집니다. 진리가 진리로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진리가 길로 보이고, 진리가 생명처럼 내 안에서 숨 쉴때 였습니다. 모든 만물을 육체(외모)대로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지성너머에 있는 '영성' 아닐까요? 기독교의 영성은 현상너머 '의미Meaning'을 쫓아갑니다. 모세를 따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보고 당장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옛사람의 습관이 또 그들의 길을 가로 막았던 것입니다. 사백여년 동안 반복된 노예 시절의 습관이었습니다. 가야만 할 '진리의 길'을 가로 막은건 환경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의 습관'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라 출애굽한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요? 우리의 모습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을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 찾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길로 삼아 걷는 법을 깨달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4:3). '새 사람The new self'이 되는 힌트를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은 자기 소견대로 살아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진리(계명)를 삶 가운데 적용함으로서, 온전히 소화시켜 길로 만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계명'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엔톨레ἐντολή'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두루마기'가 원어로는 같은 단어 '엔톨레 ἐντολή'입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저가 생명나무에 나가며,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 복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