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12월의 엽서 #이해인
12월의 엽서 / 이해인 소매끝에 묻어나는 바람냄새가 겨울이란 계절이 더 깊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정신없이 숨차게 지내온 시간속에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였던 내 조급함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 해는 떠날 준비를 합니다 새날에 부푼기대도 깨알같이 적었던 지키기위한 맹세도 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끝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붉게 물들어 숨어버리는 찬란했던 태양을 깊은한숨으로 바라다 봅니다 그저 침묵속에 마른 웃음이 나옵니다 누구보다 강한 내가 되고 싶어서 잔인하게 벼랑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무언가 이루기를 소망했는데 상처투성이의 심장은 멈추지 않는데 세상은 또 한번에 허물을 벗습니다 마음에 병이 났습니다 삶에 지치고 지친 나와는 상관없이 갈곳을 가는 냉정한 날들때문에 멍하니 침묵으로 볼수밖에는 그저 끝자락을 붙잡고 조금만 천천히 떠나주기를 그렇다고 아무것도 변할것도 없는데 떼라도 쓰고 싶어집니다 멀리서라도 지금을 기억하고 싶으니 조금만 조금만 더디 떠나주기를 어리석은 나는 그렇게 또 부질없는 바램을 합니다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