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싸이코아내, 이순신을 천거하고 징비록을 쓴 유성룡의 스승 이황의 아내가 사이코? 왜 아내는 사이코가 되었나? 장례식장에서 이황이 붉은 옷을 입은 사연, 연산군과 권씨
퇴계 이황의 싸이코(?) 아내 퇴계 이황은 우리나라 천원권 지폐의 주인공이며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천거하고 징비록을 썼던 유성룡의 스승되는 인물이다 퇴계 이황은 21세에 허씨 부인과 결혼하지만 이황이 27세때 둘째 아들을 낳고서 죽었다 이후 30세에 둘째 부인인 권씨와 혼인한다 둘째 부인인 권씨의 할아버지인 권주는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한 사람으로 갑자사화 즉 연산군이 자신의 친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교살당하여 죽고 할머니는 관가의 노비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 권질은 유배를 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린 권씨는 정신질환을 얻게 되었다 권질은 이황의 사람됨을 눈여겨 본 후 퇴계에게 집안의 참극으로 인한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한 자신의 딸을 의탁하였다 권질은 “자신의 딸이 집안이 모진 일을 겪은 후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색시로 데려가려는 사람이 없다” 고 말하고 이황에게 딸을 부탁하였다 퇴계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30세에 권씨를 부인으로 맞이 하였다 퇴계는 부인을 이해하고 아끼며 임지로 동행하며 정성을 다해 자상하게 보살폈다 어느 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일가친척이 종가댁에 모여 있을 때 권씨 부인이 제사상 위의 배를 훔쳐 치마속에 숨겼다 이 광경을 보고 일가 친척이 눈치를 주고 퇴계의 형수는 권씨를 질책했다 퇴계는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음복을 하는 것은 예절에 벗어난 일이지만 조상께서는 철부지를 귀엽게 여길 지언정 노여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며 ”형수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잘 가르칠 것이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고 부인을 감쌌다 퇴계의 말에 동서를 꾸짖던 형수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동서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야 서방님 같은 좋은 분을 만났으니“하고 말하였다 제사가 끝난 후 퇴계는 아내를 불러 ”왜 그러한 행동을 하였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권씨는 ”배가 몹시 먹고 싶어서 그랬어요“하고 말하였다 이에 퇴계는 권씨 부인을 위해 배를 손수 깎아 주었다 한편 퇴계가 어느 상가에 조문을 하러 가려던 때에 흰색 도포 자락이 헤어져 있어 부인에게 궤매 달라고 하자 헤어진 흰 도포에 큼지막하게 빨간 헝겊을 기웠다 도착한 상가에서 ”예학에 밝은 사람이 흰 도포를 어찌 빨간 헝겊으로 기워 문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으로 왔는가?“ 하고 물었다 퇴계는 별다른 대답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퇴계는 권씨 부인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녀를 아끼고 존중하였다 권씨 부인과 혼인한지 16년이 되는 해 부인은 출산 중 난산으로 사망하고 태어난 아이도 며칠 후 죽고 말았다 퇴계는 자녀들에게 친모와 계모를 차별하지 말라 가르쳤고 자녀들은 권씨 부인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그리고 퇴계 또한 아내의 제삿날이 되면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한편 이황의 장손인 이안도가 자식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또 임신을 하는 바람에 젖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안도는 이황에게 유모를 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이황의 하인 중 마침 딸을 낳은 하녀를 유모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이황은 ”내 자식 살리겠다고 남의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다“ 하며 거절하였고 장손은 첫째 아들을 미음 등을 먹이며 키워야 했다 또한 둘째 아들이 일찍 죽어 둘째 며느리가 1년만에 청상과부가 되자 둘째 며느리가 재가하도록 허락하였다 한편 이황이 25살이 어린 기대승과 나이와 직위를 떠나 격의없이 토론하였던 사단 칠정 논쟁은 유명하다 이황은 허울뿐인 도학자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실천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진실을 추구하고 실천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았던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다 할 것이다 #퇴계이황#사이코#유성룡#임진왜란#이순신#연산군#갑자사화#제사#장례#배#권씨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