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일병시절 226- 연대 병기과 경계파견 4- 여러 가지 추억들 - 1 팀스피리트 훈련 대비 재물조사 (2사단, 노도부대, 32연대, 스키대대, 양구, 구암리, 격오지파견)
나의 일병시절 226 연대 병기과 경계파견 4. 여러 가지 추억들 1) 팀스피리트 훈련 대비 재물조사 팀스피리트 훈련을 대비한 준비 중에서 가장 우리를 괴롭힌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행군과 전술 훈련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리 노도부대에서는 거의 일상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힘든 것일 뿐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그 당시 우리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바로 보급품 정비와 재물조사였다고 생각됩니다. 행군이나 전술훈련이 우리의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면 보급품 정비와 재물조사는 육체와 정신을 모두 피곤하게 하는 원흉이었습니다. 자대에 있을 때에도 매달 한 번씩 있는 보급경제 확인감독의 날에는 재물조사와 정비를 했는데 이번 팀훈련을 준비하면서는 거의 3~4일에 한 번씩 보급품에 관한 조사와 정비 등이 행해졌습니다. 아무래도 미군과 함께하는 훈련이니 만큼 정비가 안 된 허술한 장비를 가지고 나가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보급품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그 당시 들리는 소문으로는 보급품 지급 순위가 전방을 지키는 전투부대가 최우선이고 민간인들의 접촉이 많은 후방 향토사단이 그 다음이고 우리 같은 교육사단은 가장 후순위라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보급품들은 최악이었고 아무리 정비를 해도 좋아질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우리들이 사용하는 수통의 생산년도는 거의가 1941년 에서 1945년으로 미군들이 제2차세계대전 때 쓰던 것이었고, 방독면들도 베트남전쟁에서 미군들이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들 머리에 쓰고 아무리 끈을 조여도 가스가 새들어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앞서 몇차례 말한 통일화라고 불리는 천으로 된 작업화는 다 낡아서 꿰매고 또 꿰매서 신어야 했고, 군복들도 자대에서 받은 것들은 거의가 선임들이 입다가 반납한 낡은 것들로, 입다가 해지면 기워 입어야 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할 때 일시적으로 모든 보급품들을 새것으로 지급했지만 행사가 끝나고 거의 대부분을 다시 회수해 가고 본래의 헌 것을 돌려주었습니다. 이렇듯 보급품의 상태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우리들에게 총 대신 바늘을 들고 낡은 보급품을 보수해서 쓰라고 하는 것이 당시 우리 군대의 현실이었습니다. 파견지에서 첫 번째 재물조사는 파견 나온지 3일 만인 24일 수요일이었습니다. 이날 오후에 중대 인사계가 들이닥치더니 개인 관물과 장구류 실태 파악을 한다고 내무반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수량파악 및 상태 점검을 통해 정비 불량자는 얼차려까지 받으면서 수선을 떨다가 오후 늦게야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대대장 순찰이 있었습니다. 대대장은 파견 나간 예하부대를 순찰하는 길이었지만 동행한 참모들과 대대 주임상사는 역시 보급품 정비 문제를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어제 인사계가 와서 호들갑을 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대장이 돌아가고 난 뒤에 무슨 지적사항이 나왔는지 득달같이 인사계가 다시 쫓아왔습니다. 자대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 파견생활을 하니 여러모로 안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자대에서 70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보니 5분도 안 돼 오토바이를 타고 쪼르르 달려오는 것입니다. 인사계는 다시 오더니 모든 관물과 장구류를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귀신이 곡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2소대에서 대검과 철모가 하나씩 없어졌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전날 인사계가 와서 파악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다시 온 인사계가 전체 장비를 꺼내 놓고 검사하는 과정에서 이 두 가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의 물건을 좁은 내무반 침상에 꺼내 놓고 조사를 하다 보니 서로 물건이 뒤죽박죽되고 어수선한 와중인지라 처음부터 물건이 없었는지 아니면 중간에 누가 가져갔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인사계는 흥분해서 소리 지르고 우리들은 각자 자기 물건을 챙기느라 정신없고 그야말로 내무반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결국 일병 한 명의 철모와 이등병 한 명의 대검이 없어진 것으로 결론 났는데 더 황당해 하는 것은 당사자들이었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는 다 있었다는데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철모는 매일 착용하는 것이고 각자 자기 철모에는 이름 등 표시를 해 놓기 때문에 본인들은 자기 철모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파견지에서 외곽초소 근무를 하루에도 몇번씩 나가야하기 때문에 항상 사용하는 철모입니다. 그런데도 없어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혹시 대대장 순찰 때 따라온 참모들이 보급품을 확인하면서 경각심을 주기 위해 가져간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팀스피리트를 앞 둔 상황이라고 해도 대대장 순찰 때 많은 참모와 대대 인사계까지 따라 온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이 와서 보급품을 확인한다고 내무반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도 의심스러웠습니다. 모두들 정신없는 사이 한 두개 슬쩍 가져갔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의심되는 것은 대대장 일행이 돌아가고 난 뒤 곧바로 중대인사계가 와서 보급품 검열을 다시 했다는 것입니다. 전날 점검 때도 문제가 없었고 대대장 순찰 때도 문제가 없는데 인사계가 곧바로 다시 와서 점검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철모와 대검이 없어진 두 사람은 인사계로부터 얼차려를 받고 중대에 가서 철모와 대검을 받아왔고, 인사계는 ‘개인변상’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 후의 일은 잘 알지 못합니다. 이후에도 27일에는 중대장이 관물조사를 했고 파견을 마치기까지 두어 차례 더 인사계의 보급품 정비 상태 검사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피 말리는 보급품 전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