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궁열전] 중종의 후궁들 - 중종 사후 궁중에 거처한, 귀인 한씨(貴人 韓氏)와 대장금 이연생의 모티브가 된 숙원 이씨(淑媛 李氏)
#조선후궁열전 #중종 #귀인 한씨 #대장금 #이연생 #숙원_이씨 #문정왕후 #정순옹주 #효정옹주 #은대 #풍가이 #송인 오늘 조선후궁열전은 중종의 후궁들로 중종 사후 궁중에 거처한, 귀인 한씨(貴人 韓氏)와 대장금 이연생의 모티브가 된 숙원 이씨(淑媛 李氏)입니다 문정왕후의 배려로 중종 사후 궁중에 거처한, 귀인 한씨(貴人 韓氏) 중종의 후궁인 귀인 한씨(貴人 韓氏)는 조부는 청천부원군 한백륜(韓伯倫)이며, 아버지는 정국공신으로 지돈녕부사를 지내고 서원군(西原君)에 책봉된 한순(韓恂)입니다 어머니는 여산 군수를 지낸 이등전(李登全)의 딸인데, 『간이집』에 실린 묘지명에 부실(副室)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한순의 첩입니다 부실은 다른 사람의 첩을 대접하여 부를 때 쓰는 말이며 한순은 예종의 장인으로 안순왕후의 아버지입니다 귀인 한씨는 어릴 때부터 행동이 예의바르고, 성품이 온유하고 명민하였는데, 1514년(중종 9) 안순왕후를 모시려고 궁중에 들어갔다지만 안순왕후는 연산군 4년인 1498년에 승하해서 『간이집』에 실린 묘지명과는 상반됩니다 1518년에 후궁으로 들어오도록 명을 받았고, 1520년에 정7품 전빈(典賓)이 되었으며 1528년 왕자를 낳았으나 돌이 되기 전에 요절하였고, 이듬해 정5품 상궁으로 품계가 높아졌습니다 정식 후궁으로 봉작된 것은 1532년으로 종4품 숙원, 1540년 종3품 숙용이 봉작 되었는데 이 때 숙원 안씨도 숙용으로 봉작된 바, 이 숙용 안씨가 창빈 안씨입니다 중종이 승하한 뒤에는 인수궁(仁壽宮)으로 거처를 옮기려고 하였으나 문정왕후가 만류하여 궁 안팎을 오가며 살았고, 나중에 경복궁 영추문 밖의 사저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본래 선왕의 후궁들은 자수궁, 인수궁, 정업원 등에 나가서 살도록 되어있지만 문정왕후는 특이하게 희빈 홍씨, 창빈 안씨 등 중종의 후궁들을 궁중에 그대로 거처하도록 했습니다 숙의, 소의를 거쳐 선조 5년인 1572년에 종1품 귀인으로 봉작되었는데 이때는 문정왕후도 없고, 궁중의 의례를 능숙하게 알고 행하는 사람이 없어 항상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없어도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와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가 살아있던 때라서 묘지명 특유의 과장으로 보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