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때려눕혀도 다시 일어서는 좀비 복서. 때리다가 지친 타이슨이 가장 고전했다는 명승부. 220발 핵펀치 난타를 견뎌낸, 엄청난 턱을 가진 쿠바 복서 호세 리발타와의 경기

아무리 때려눕혀도 다시 일어서는 좀비 복서. 때리다가 지친 타이슨이 가장 고전했다는 명승부. 220발 핵펀치 난타를 견뎌낸, 엄청난 턱을 가진 쿠바 복서 호세 리발타와의 경기

방금 KO 당할 것처럼 뻗어버린 선수가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반격을 가해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복싱 역사에는 이렇게 역전을 당한 사례도 많습니다. 마이크 타이슨도 이렇게 소름돋는 상대를 만나 고전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펀치를 날려 쓰러뜨려도,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서 마지막 라운까지 타이슨을 괴롭혔던 선수인데요, 2014년 타이슨은 자신이 지금까지 상대한 선수들 중에, 가장 강한 상대는 에반더 홀리필드나 레녹스 루이스가 아니며, 도노반 러독도 아닌, 호세 리발타였다고 말합니다. 호세 리발타는 타이슨이 경험해 본 선수 중에, 가장 강한 턱을 가졌기 때문에, 그와의 대결이 제일 힘든 싸움이었다고 털어놓았죠. 타이슨이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하기 이전인 1986년 8월, 그의 통산 26번째 경기로서, 당시 전적 22승 1무 3패를 기록하고 있던 호세 리발타와 대결을 펼치는데요, 손쉽게 이길 줄 알았던 타이슨은 220번의 강펀치를 그의 바디에 적중했음에도 불구하고, KO 당하지 않는 리발타의 맷집에 놀라 마지막 라운드까지 고전합니다. 쿠바 태생의 호세 리발타는 10대 시절, 부모를 따라 쿠바 탈출에 성공한 후, 워싱턴 DC 근처 빈민촌에 정착하며,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198cm 키의 우람한 체격으로,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진 그는 게리 쿠니의 스파링 파트너로 활동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중, 1982년 스무살의 나이가 되어, 프로복싱에 데뷔합니다. 데뷔 이후 초반, 10연승을 구가하며 복싱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요,. 마이크 타이슨을 만나기 이전까지, 강호들을 연거푸 물리치며, 22승 1무 3패의 기록을 유지 중이었던 리발타 선수는 당시 세계랭킹 10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프로데뷔 4년 후, 드디어 세계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나게 되죠. 그 전제조건은 마이크 타이슨에게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이슨은 그때까지, 25승 무패 23KO의 기록을 지닌 헤비급의 무시무시한 다크호스였죠. 하지만 리발타 선수는 꿈에 그리던 타이틀 매치에 다가서기 위해, 그를 반드시 꺾어야만 했습니다. 타이슨은 그때까지, 단 2번의 판정승을 제외하고는 모두 KO승으로 이끌던 강펀치의 소유자였습니다. 타이슨의 KO 희생양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2명의 선수, 제임스 틸과 미치 그린은 타이슨과의 대결에서 철저하게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맞대결을 회피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타이슨에게 KO패를 당하지 않은데 성공했었죠. 하지만, 호세리발타는 당당하게 타이슨과 정면 대결을 계획합니다. 그는 그때까지, 단 한번도 KO패를 당해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맷집을 가진 복서였는데요, 게다가 리발타는 타이슨보다 20센치가 더 컸기 때문에, 장기전에서 유리할 거라 판단합니다. 그 장점을 살려 일단 맞대결로 부딪혀보고 그렇게 계속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헛점이 보이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의 맞대결 작전을 성공했을까요? 1986년 8월에 펼쳐진 이 파이트는 타이슨에게 가장 큰 고난과 어려움을 준 경기로, 훗날 회자되고 있습니다. 타이슨은 마지막 라운드까지, 220발의 펀치를 리발타 바디에 적중시켰습니다. 그 중엔 100방은 타이슨이 온 체중을 실어 날린 강펀치였죠. 그 이전까지 많은 선수들이 타이슨의 그런 핵펀치 한방을 빗맞기만해도 KO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가족들이 아른거렸고 이 경기만 넘기면, 바로 뒤에, 자신의 인생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세번의 따운을 당하고서도, 이를 악물고 마지막 라운드까지 버텼지만, 불행하게도 타이슨에게는 큰 헛점이 보이지 않았고, 더이상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 다음달, 마이크 타이슨은 예상한대로, 세계챔피언에 오릅니다. 타이슨이 챔피언이 된 것에 자극을 받은 리발타 선수는 더욱 훈련에 매진하는데요, 1987년 1월, 그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배를 안겼던 전세계챔피언 레온 스핑크스를 1회 KO로 무찌르고, 10연승을 구가하며 세계타이틀 도전을 위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뷔후 8년 동안,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슨에게 패배한 이후, 그에게 타이틀 전의 기회는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실망감으로 맥이 빠졌던 것일까요? 그는 곧바로 연패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는데요, 리발타는 그후로 10년간 더 선수생활을 하다가 결국, 56전 38승 17패의 평범한 기록을 남기고 은퇴합니다. 꿈을 가진 선수는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죠. 하지만 꿈이 한번 꺾인 사람은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호세리발타가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훗날 타이슨은 호세리발타 선수의 강인한 의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저그런 무명 복서로서 이름이 사라질 뻔했던 호세 리발타는 타이슨으로 인해 다시 호출되며, 타이슨을 가장 곤혹스럽게 했고, 중꺽마의 정신을 보여주었던 명복서로 다시 인정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