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 거제도 포로수용소 : 현대사 아픔의 현장 (Geoje Island Prisoner of War Camp during the Korean War)
"거제도 포로수용소" Filming date : 2023 10 14 Shooting equipment : MAVIC AIR3, A7M4 Place : 경남 거제시 고현동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producer : Director Hong hongsangpyo7@naver com 010-2140-1178 #거제도 #포로수용소 #거제도여행 한국전쟁 시기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에 만들어진 포로수용소이다 1950년 국제협약인 「포로의 대우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 협약」에 따라 세워졌다 수용소는 ‘포로들에게 위협이 없을 정도로 전투 지역에서 충분히 떨어진 지역에 소재’하게 되어 있어 수용소를 당시의 신현면, 즉 오늘날의 신현읍 고현리의 농토 및 임야 1,200정보쯤을 징발하여 세웠다 그 때문에 당시 그곳에 살던 주민 2,116세대가 수용소 대지 밖으로 쫓겨났다 이후 그 자리에 수없이 많은 막사가 들어섰고, 뒤이어 포로가 된 인민군과 중공군이 30만 명쯤 들어왔는데, 미 해군 함정이 흥남 부두에서 싣고 온 피난민과 육지에서 건너온 피난민 20만 명이 합쳐지면서 거제도는 하루아침에 사람들로 들끓는 섬이 되었다 1951년 5월 포로수용소 내 제76수용소에서 수용소 사령관 F T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어 4일 만에 석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인민군 대좌 이학구가 주동한 이 사건에서 그들은 포로의 대우를 개선해줄 것과 자유의사에 따른 포로 송환 방침을 중지할 것, 포로대표위원단을 인정할 것 등을 요구하며 유엔군과 대치하는 한편, 반공 포로를 인민재판에 붙여 처벌하였다 사건이 일어난 제76수용소에서는 즉결인민재판의 결과에 따라 처형된 반공 포로의 송장이 날마다 몇 구씩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때 죽은 반공 포로가 105명에 이른다 유엔군의 강력한 저지로 도드 준장이 구출되면서 사건은 매듭지어졌으나, 반공 포로와 공산 포로 간의 싸움은 더욱더 극렬해져서 마침내 따로 떼어놓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북한과 유엔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에 따라 전쟁이 끝나고 휴전된다 이때 남북 양쪽은 전쟁 포로를 교환하였는데, 남과 북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과 북 어디도 아닌 ‘중립국’을 택했고, 북한군 포로 74명, 남한군 포로 2명, 중국군 포로 12명은 인도, 남미 등으로 흘러들어가 신산했던 세월을 겪었다 거제 고현성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둘레가 3 038척이고 높이가 13척이다고 나와 있다 1432년(세종 14) 성 안에 40여 칸의 건물을 지은 후 사등성에 있던 관아를 이곳으로 옮겨 읍성으로 삼고 적의 침입 때 인근의 주민이 들어와서 지키도록 하였다 1592년(선조 25) 5월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하여 함락된 때도 있었으며 남해안 수군(水軍) 진영이 이웃한 요새였다 1663년(현종 4) 관아를 지금의 거제읍으로 이전함에 따라 읍성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1950년 6·25전쟁 전에만 해도 원형에 가까운 성벽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UN군에 의하여 포로수용소가 설치될 때 성의 일부를 헐어 현재는 남서쪽 부분 600m 정도만 옛모습의 성벽을 남기고 있다 고현성은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는 평지 옹성이며, 지금은 성내에 거제시 청사가 자리잡고 있다 1979년 5월 2일 경상남도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