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생일 1, 3, 7, 8, 9 태어난 단명사주의 특징 - 강남점집 용한무당 점집추천 점집후기 연이궁 꽃대신 010-6625-2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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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엔트]네이버 https://blog.naver.com/goodent1638 [굿엔트]페이스북   / goodent1638   [굿엔트]트위터   / goodent6   [굿엔트]카카오스토리 https://story.kakao.com/goodent1638 [굿엔트]스토리채널 https://ch.kakao.com/channels/@gooden... 명다리(命桥) 무당과 단골사이에 수양(收養) 관계를 맺는 표시로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수양자의 생(生), 시(時), 성명과 ‘수명장수(壽命長壽)’ 또는 ‘수명장수 재수발원(壽命長壽 財數發願)’, ‘칠성님전 수명장수 발원’이라고 써서 신에게 바치는 무명천. 형태 명다리는 무명천, 실, 한지 등으로 이루어진다. 평소에는 무명천 안에 타래실을 넣고 이 타래실을 넣은 무명천을 접어서 다시 한지로 포장해 쌓아 둔다. 혹은 벽에 줄을 쳐 놓고 명다리와 실타래를 함께 걸어 놓는 경우도 있다. 면포의 양은 많을수록 좋지만 적을 경우 7척 7촌(약 223㎝) 혹은 1필을 사용한다고도 하지만 일정치는 않다. 내용 명다리는 부모들이 태어난 아이의 나이가 홀수인 1살, 3살, 5살 등에 단골무당에게 바친다. 바친 명다리는 칠성님 전에 놓고 아이의 수명장수를 빌어주며 이후 칠성님 아래 함이나 신단 밑에 보관한다. 한 번 바치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갱신하여야 하며 새로이 만들어 바쳐야 영험이 지속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행위를 일컬어 어린아이의 무병장수를 위하여 무녀에게 ‘아이를 파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무당에게 팔린 어린아이는 무당의 자녀가 되어 무당의 ‘신딸’과 ‘신아들’이 되고 무당은 ‘신어머니’가 되는 단골관계가 성립된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수명장수를 신력(神力)이 있는 무당이 책임진다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무당은 단골 아이들의 수명장수를 빌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어서 무녀 자신의 신당굿(진적)을 할 때 반드시 이 어린아이들의 명다리를 가지고 춤을 춘 다음 축원을 한다. 내림굿 중에 칠성거리 등에서 명다리를 들고 춤을 추기도 한다. 무당이 이사를 하게 되면 명다리를 팔 수도 있고, 죽었을 때에는 무계를 계승받은 무당이 명다리를 인계받거나 소각한다. 명다리는 단골들이 명을 길게 해 달라고 바친 것이므로 그 규모를 통해 무당들의 단골 판도를 알 수 있다. 어떤 무당은 따로 명다리 방을 마련하여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만큼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시 마포구 밤섬부군당 당주 김춘강의 경우는 면포 1필을 차곡차곡 접어 그 안에 실타래를 넣었다. 면포 겉에는 ‘칠성님전 수명장수 발원’이라고 쓰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적어 놓았다. 강화군 외포리 곶창굿 당주 정정애의 경우 무명 안에 타래실을 넣고 무명을 접어 다시 한지로 포장해 두었다. 무명의 총 길이는 15마로 약 1,350㎝이며, 천의 가로 길이는 43.5㎝이다. 포장해 둔 상태에서 길이는 가로 48.5㎝, 세로 23㎝이다. 이 한 세트가 한 사람의 단골을 위한 것으로 이 명다리를 보관하는 방을 신당 바로 옆에 마련해 놓고 있다. 강원도 영월군 덕포 3리의 고재만의 경우, 신당 문을 열면 마주 보이는 벽에 줄을 쳐서 그 줄에 명다리와 실타래를 걸어 놓았다. 단골들은 명다리를 바치면서 고깔도 같이 바친다고 한다. 대수대명(代壽代命)은 ‘수명을 대신하고 명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어떤 정신질환이 발병하거나 어떤 액운이 닥쳤을 때, 무속적 세계관에서는 그 원인을 조상이 서낭고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런 경우에는 산신이나 용신, 칠성 등을 대상으로 아무리 기원해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서낭고를 풀어야만 재액을 물릴 수 있다고 여긴다. 대수대명은 서낭고를 풀어내는 대표적인 의례이다. 『무속대백과』에는 대수대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조상들이 맑지 못하면 동토나 부정이 잘 따라 들고 잘 생긴다. 조상들이 해탈을 하지 못하고 ‘성황고’에 매어 있다든지, 산소 자리가 좋지 못하여 괴로운데, 그 집 자손들은 자기들만 잘 먹겠다고 살생을 하거나 자주 잔치를 하거나 또는 남의 집 잔칫상에 다녀와도 신수가 불길하면 탈이 나고 심할 경우에는 지골이 내려서 중환자가 생겨나기도 하는데…….” 문장이 비록 난잡하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즉, 중환자를 대체물(代替物)로 일단 죽음을 맞게 하여 재생시킴으로써 치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수대명은 일반적으로 어떤 대체물에 환자의 생년월일, 성명, 대수대명대신(代壽代命大神) 등을 쓰고, 삼베로 감싸거나 끈으로 묶되 반드시 일곱 매로 염습(殮襲)을 하여 서낭당에 매달거나 묻는다. 예컨대 1998년 가을에 제천 염의춘(1931년 단양군 출생, 충북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거주, 무 40여 년의 학습무)이 주관한 ‘병굿’에서 대수대명이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제천 염의춘의 병굿은 임시제였으며, 3일굿으로서 병굿의 전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병인(病因)을 죽은 전처(前妻)의 한(恨)이 서린 역신(疫神)으로 간주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유기적인 의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제차1일과 제차 3일은 안택굿으로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병굿으로 제차 2일은 전체 6석으로 진행되었는데, 제4석이 대수대명의 과정이었다. 대체물은 ‘살아 있는 닭’이었다. 우선 닭의 입에 환자의 나이 수대로 쌀알을 집어넣고 명주실로 동여맨다. 이어 환자의 속옷에 생년월일과 이름을 붉은색으로 기록하고 그것으로 닭을 에운다. 이렇게 준비된 닭의 목을 친 후 사람이 죽었을 때 염을 하는 방식과 같이 12매의 염장을 맨다. 이로써 환자의 재액이 닭에게 전이되었다고 믿는다. 굿:무당이 신을 청하고 환대하고 환송하는 과정으로 구성된 무속의례. 넓은 뜻으로는 무당이 하는 굿 외에 호남·영남지역의 동신제(洞神祭)나 농악에서 징·꽹과리·장구 등의 풍물을 울리는 것을 ‘메굿’ 또는 ‘굿친다’고 하여 굿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나, 좁은 뜻에서는 무속의 제의에 국한하여 사용된다. 제의에는 먼저 제의를 올려야 할 신앙대상으로서의 신, 이 신을 신앙하여 제의를 올리는 신도, 신과 신도의 사이에서 제의를 조직적으로 진행시켜야 할 전문적인 사제자(司祭者)로서의 무당이 있어야 한다. 이 셋은 제의를 구성하는 일차적 요건으로, 이 중에서 어느 하나가 없어도 제의는 성립될 수 없다. 무속의 제의는 규모에 따라 크게 ‘굿’과 ‘비손(또는 손빔, 비념)’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굿은 여러 명의 무당이 신에게 많은 제물을 올리고 재비(악공)의 무악반주에 맞추어 무복(巫服)을 입고 가무와 실연(實演)을 위주로 제의를 하는 것이고, 비손은 한 사람의 무당이 신에게 간소한 제물을 바치고 가무 없이 앉아서 축원을 위주로 하는 약식 제의이다. 따라서 제의진행 때 서서 한다고 하여 전자를 ‘선굿’, 앉은 채로 한다고 하여 후자를 ‘앉은굿’이라 하기도 한다. 동제인 ‘당굿’과 같이 규모가 큰 제의는 당연히 굿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기자(祈子)·치병·재수발원 등의 제의는 비손이나 굿 어느 형식이든 가능하다. 제의규모의 비중에 따라 비손과 굿 또는 ‘작은 굿’과 ‘큰 굿’, 어느 쪽이든 제의가 가능하다. 영역닫기굿의 역사 굿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어 그 역사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같은 제천의식이 있으나, 오늘날의 무당굿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남해왕조(南海王條)의 것으로 여기에서 신라 제2대 남해왕은 차차웅으로 불렸는데 이는 방언으로 무당의 뜻이었다고 하고, 남해왕이 시조묘를 세워 친누이 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구려에서도 무당이 유리왕의 득병 원인을 알아내고 낫게 한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당시의 구체적인 제의 내용은 알 수 없다. 『고려사』에는 무격을 모아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자주 보이는데, 굿에 관한 가장 직접적인 기록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되어 있는 장시 「노무편 老巫篇」에 나타난다. 즉, 무당이 신이 들려 공수를 내리고 도무(蹈舞)하는 등의 굿의 묘사는 오늘날 중부지역의 무속과 상통하고 있어,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무속의 제의체제가 갖추어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당이 점을 치고 병을 고친 기록이 남아 있는 삼국시대에도 굿을 했으리라고 추정되고, 고고학자료에서 오늘날 무당의 방울과 비교되는 제의용 방울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굿의 역사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굿의 종류와 목적 굿의 종류는 규모에 따른 대소의 형태문제와는 달리 그 목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