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생일없는 소년(1958)
노래 이야기 우리 가요사에서 구수한 입담과 흥이 넘치는 노래로 서민적인 애환과 정을 노래했던 대표적인 가수는 김용만 선배님일 겁니다 김용만 선배님은 경기민요를 하던 국악인 김대근 선생님의 5남4녀 3남이었는데요 부친의 영향으로 유년시절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했고요 하모니카와 기타를 독학으로 익혔고,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까지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는 놀라운 재능을 선보였다고 하죠 그러다, 6 25 전쟁이 휴전상태로 돌입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악기점을 하던 친구집에 놀러갔고요 거기서 운명처럼 작곡가 김화영 선생님을 만나서 1954년 김화영 선생님이 작곡하고, 김부해 선생님이 작사한 노래 ‘남원의 애수’를 발표하며 가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고전소설 ‘춘향전’에서 모티브를 따온 ‘남원의 애수’는 남원 사또의 자제였던 이몽룡과 기생 월매의 딸인 춘향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리면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모두가 다 아는 춘향전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쉽고 친숙하게 노래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고요 그 인기에 힘입어 1957년에도 김용만 선배님은 고전소설 ‘심청전’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서 ‘효녀 심청’이란 곡을 발표하며 인기가수로 각광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노래뿐만 아니라 뛰어난 만담실력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일반 대중가요로 데뷔했지만, 점차 우리 가락을 접목시킨 민요, 그리고 희극적인 풍자곡인 만요까지 노래하면서 음악적 영역을 넓혀간 김용만 선배님의 노래에는 흥과 애환, 풍류와 해학이 넘쳐나는 한국적인 정서가 늘 가득했습니다 특히, 1930년대와 40년대에 유행했던 ‘만요’라는 장르의 계보를 이어간 유일한 가수가 바로 김용만 선배님이었는데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50년대 들어 만요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은 좀 더 서민들과 친숙하고 또 재미있는 노래를 하고 싶어서 방향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코믹하고 풍자적인 노래들을 많이 발표했어요” 말 그대로 다재다능했던 김용만 선배님은 작사, 작곡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잘 있거라 부산항’, ‘못난 내 청춘’, ‘왈순 아지매’, ‘행운을 드립니다’, ‘두 마음’, ‘명동 블루스’ 등 100여 곡 이상을 작사, 작곡해서 동료가수와 후배가수들에게 선사했고요 ‘회전의자’같은 영화 주제가도 많이 불렀고,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하면서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던 그 유명한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역배우로도 활동 했는데요 우리 가요사에서 가장 재능 많은 음악인을 꼽으라면 아마도 김용만 선배님이 아닐까 짐작해보게 됩니다 그 누구보다도 서민들의 고달픈 마음을 유쾌한 노래와 만담으로 위로해준 김용만 선배님이었지만, 그중에는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애달픈 노래도 있었는데요 김용만 선배님의 초창기 히트곡인 ‘생일없는 소년’이 바로 그 노래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6 25전쟁 이후 전국에 ‘고아원’이 ‘유치원’보다 더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쟁 직후의 남한은 세계 최빈국이었고,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아이들은 학교에서 주는 구호물자로 하루하루를 버텼었죠 특히, 전쟁 중에 부모를 잃거나 뜻하지 않게 버려진 아이들도 너무 많았던 1950년대 그 시절 어른들의 눈에는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릴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이 한없이 측은하고 안타까운 존재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아이들의 애달픈 현실을 담아 노래한 곡이 ‘생일없는 소년’이었는데요 1958년 최치수 선생님이 작사하고, 김성근 선생님이 작곡한 이 노래는 김용만 선배님의 목소리를 통해 많은 어른들의 눈시울을 적셨구요 그 당시 아이들 중에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앵벌이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머님 아버지 왜 나를 버렸나요 한도 많은 세상길에 눈물만 흘립니다 동서남북 방방곡곡 구름은 흘러가도 생일없는 어린 넋은 어디메가 고향이요 ( 대사) 얘, 철아, 너희들은 어떻게 지내니 죄도 많은 이 에미는 모든 풍파와 싸우다가 너희들을 버렸단다 그리고 너희 아버지는 다시 못올 먼 길을 떠났단다 어머니, 아, 또 꿈이었구나 어머님 아버지 왜 말이 없습니까 모진 것이 목숨이라 그러나 살겠어요 그리워라 우리 부모 어디메 계시온지 꿈에라도 다시 한번 그 얼굴을 비춰주오 ” 가사만 보아도 가슴속에서 눈물이 흐르는 이 노래는 그 당시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아이를 잃은 아픔을 달래주었고요 노래가 발표된 지 8년 후인 1966년에는 ‘안현철’감독님에 의해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화의 주제가인 ‘생일 없는 소년’은 배호 선배님이 노래했는데요 조동희, 허명자, 이예춘, 조미령, 김희갑 선생님이 출연했던 영화 ‘생일 없는 소년’은 생일이 언제인지 모르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청년이 삶의 애환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고요 국제극장에서 개봉해서 1만여 관객이 들 만큼 인기를 모았는데요 이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전쟁으로 모진 고난을 겪고, 어두운 삶의 터널을 악착같이 버티고 이겨낸 생일없는 소년들은 어느새 그 모진 시간을 잘 살아내서 이제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희끗희끗한 백발의 나이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들 마음 한 켠을 묵직하게 울려주지요 우리에게도 이런 노래가 있었구나, 이런 시절이 있었지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도 여전히 듣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이 아려오는 노래가 ‘생일없는 소년’입니다 예전과 비하면 너무나도 발전하고 잘 살게 된 요즘이지만, 그 밝음 뒤에 숨겨진 그림자 속에서 어디선가 울고있을 생일없는 소년이 있지는 않을까 연말을 맞아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