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사]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사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근대사]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사부사와 에이이치

#존왕양이 #바쿠후 #히토쓰바시_요시노부 #도쿠가와_요시노부 #파리만국박람회 #오오쿠보_도시미치 #오우지제지 #히토쓰바시대학교 #도쿄후우한센회사 #제국호텔 #기린맥주 #삿포로맥주 동영상이 잘못 업데이트되어 다시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1840년 서구 열강 사이에서는 낙후된 아시아 국가들을 놓고 누가 먼저, 얼마나 차지하는가 하는 경쟁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서 한몫 잡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몰려들었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서양 열강의 먹이가 되어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아직 본격적으로 침략을 받지 않았지만, 일본의 지리적 장점과 상업적 가치를 눈여겨본 나라들이 하나둘 접근해 오기 시작 했습니다 여기에 바쿠후의 부패와 무능함이 드러나는 사건이 계속되자, 일본 각지에서는 바쿠후에 대한 불만이 수그러들 줄 몰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한 호수의 수면 같았지만, 수면 아래에는 이미 거대한 개혁의 소용돌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본격적으로 혼란한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 사이타마 지역의 부농 겸 부상(富商)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을 좋아해 익혔는데, 유복한 가정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학문을 좋아한 성격이 훗날 일본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가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1853년 미국은 쿠로후네를 앞세우고 일본을 협박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시켰는데 통상의 문이 열리자 일본 내에서는 바쿠후의 무능함을 비난하는 존왕양이 세력들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열혈청년이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도 당시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가 1863년부터는 뜻이 맞는 몇몇 젊은이들과 함께 무력 도바쿠 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바쿠후 쪽에 새나가는 바람에 요주의 인물이 되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지만 도피 생활을 하던 중에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 쇼군 계승자 후보였던 히토쓰바시 요시노부, 훗날 도쿠가와 요시노부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쇼군이 된 인물이 그 사람으로 이 인연으로 그는 요시노부의 가신이 되고 무사의 신분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