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편 보배로운 기름, 헐몬의 이슬 / 김광영목사

시편 133편 보배로운 기름, 헐몬의 이슬 / 김광영목사

순례자가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찬미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성전에 나아오기까지 순례자들마다 겪은 여정은 다를 것이나 이 모든 여정을 마치고 그들이 지금 이곳에서 누리는 것은 이 길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총이며, 하나님의 영광이다 각자에게 부어진 여정의 개별적 은총은 이제 시나브로 흐려진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하나이며 한 집안의 식구들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른 것들은 흐릿해지고 희미해진다 자기가 사라지고 은혜와 영광만이 가득해 진다 오경웅, 『시편사색』 송대선, 꽃자리, 2019,16-717쪽 이 시 전편에 흐르고 있는 감정은 형제의 화목과 화목한 형제를 가진 가정의 아름다움과 거기에 넘치는 축복을 노래하고 있다 “아론의 수염”과 “헐몬산의 이슬”과 같은 서로 상이한 상징을 말함으로 이 시의 신비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 같다 동양 사람의 가족제도의 아름다움을 이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종교시라기보다 일반 대중이 가정에서나 거리에서 부를 수 있는 속가(俗歌)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정은 그 육신의 아버지만이 가장이 아니고 그들의 하나님을 육과 영의 아버지로 모시고 이 아 버지 하나님의 신앙으로 가정이 구성되고 유지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정의 노래라 해서 반드시 속된 노래라 할 수 없다 “형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는 것은 얼마나 좋고 기쁜 일인가 ! ” 이스라엘 사회는 그들이 유목민이었을 때는 이 형제애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아브라함과 롯, 에서와 야곱 등에서 보는 대로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경문화와 그 사회 속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이 아름다운 미풍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집이나 땅과 같은 개인소유가 생기게 되었을 때,그들은 그 집의 땅,그 가정의 소유보다는 “내 땅’’ 내 집”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형제가 소유권 때문에 싸우고 단란하고 화목했던 형제애가 깨어지기 시작했다 이 결과 형제는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 이 높아졌고 형제가 서로물건이나 돈을 빌어 쓰는 경우도 이자를 취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일은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고유한 유목민의 문화와는 배치가 되므로 신명기 법전에서는 이런 일을 금지하고 있다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 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라”(신 23 : 19) 이 시인은 한 가정에 형제들이 함께 거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말로써 “수염과 이슬”의 비유를 하고 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 에 홀러서 옷깃까지 내림같고” (2절)“헐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림 같도다”(3절) 여기서 “아론의 수염”과 “헐몬산의 이슬”을 말했는데, 아론의 “수염”에 기름이 넘쳐 흐른다는 것은 아론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받을 때 그 머리에 기름붓는 일을 상기시켜 이 형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직분을 맡았음을 말하고 있다 •아론은 그와 함께 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띠와 관을)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할지니라”(출 28 : 41) 이렇게 사명감에 대한 의식이 강렬하여 머리와 수염과 옷깃에 넘치는 것 같다고 한 이 표상을 좀 더 강조하여 “헐몬산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한다(3절a) “시온과 헐몬”의 거리가 상당한데 어떻게 이 둘을 연결시킬 수 있겠느냐 함을 독자는 의심한다 궁켈과 이르쿠(Jirku)는 “시온”이란 말은 이 시편의 필사자가 “이이온”(헐몬산 서남 쪽에 있는 구롱지 이름)을 잘못 기록한 것 이라 한다(왕상15:20 ; 왕하15 : 29 ; 대하 16 : 4) 그러나 이렇게 읽는다고 해서 아무 도움을 얻지 못한다 다만, 이 말은 “헐몬산은 그 높음과 방향 때문에 많은 이슬을 가진다”는 천후적인 사실에서 “시온의 이슬”이란 말은 “굉장히 많은 이슬”로 이해할 것이다(바이저) 형제들이 함께 화목하게 산다는 것은 큰 사명의식에서 이슬처럼 서로에게 생기와 신선함을 주어 그 가정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커크파트릭 (Kirkpatrick) 이 이해한 대로 “형 제들이 단합하여 화목함아 그 나라에 주는 영향은 마치 이슬이 채소에 생기를 주는 것과 같다”고 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코이노니아 공동체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단순히 유일신이 아닌 삼위 일체의 신이시다 삼위 하나님은 태초부터 인격적인 교감속에 존재하고 계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처음부터 함께 함으로 존재하셨고, 우리는 그분을 닮은 존재이다 우리의 교제는 꼭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목표 성취로 지배되는 경영 마인드 세상에서 목표없는 만남은 시간낭비처럼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교제 그 자체를 위해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도의 교제가 바로 이런 축복의 나눔터이다 교제를 상실한 공동체는 더 이상 건강한 공동체일 수 없다 이동원, 『묵상의 샘』, 압바암마, 2014 284-285쪽 이 시편은 현대와 같이 핵가족 시대에 사는 신도들의 가정에서 깊이 명상할 만한 시이다 우리 한국 가족제도의 전통도 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가족제도와 다를 바 없다 “대가족제도”란 말 아래 우리는 대대로 한 집에서 사는 미풍(美風)을 가져왔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는 그것이 사라지고 말았다 욥의 가족과 같이 “각각 자기 집”에 거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의 생신날에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그 부모를 모시고 형제들의 식구들과 다 함께 모여 축하를 할 수 있는 일은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