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독립운동 유적지] 베트남 후에시 후에왕궁

[외국 독립운동 유적지] 베트남 후에시 후에왕궁

후에시내 중앙에 유유히 흐르는 흐엉강(Song Huong)을 중심으로 북쪽은 왕궁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 남쪽은 레러이(Le Loi)거리를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로 조성되어 있다 멀리 후에의 외성에 들어서게 되면 웅장한 국기게양대와 시간을 잊은 채 잠들어 있는 대포들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내성인 완조(阮朝)왕궁을 만나게 된다 왕궁문을 지나면서 태화전(太和殿)이라 불리는 궁궐을 만난다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한 흔적을 쉽게 볼 수 있으나 규모는 그에 비할 수는 없게 작다 태화전 뒤쪽은 월남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아직 복구가 되지 않는 상태이다 응오몬(왕궁문)은 성벽의 동서남북에 있는 4개의 문 중 남쪽 문으로 관광객들은 이 문으로 입장한다 태양이 정상에 오는 남문을 정문으로 삼는 중국 관습을 따라 이 문이 궁전의 정문이 되었다 2대 민망(Minh Mang) 황제 시대에 창건되었고 12대 카이딘(Khai Dinh) 황제 때에 재건되었다 3개의 입구 중 중앙 문은 황제가 외출할 때만 사용하였다 문 위에 있는 중국식의 누각에 오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남쪽의 플래그 타워와 북쪽의 왕궁 전체가 모두 내려다 보인다 1945년 마지막 황제가 된 바오다이(Bao Dai)는 이곳에서 왕조의 종말을 고했다 태화전은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모방한 궁전으로 응오몬 정면에 있다 1803년 초대 황제 지아롱제 때 창건하였다 여기서는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빈환영식 등이 거행되었고 대청마루 중앙의 대좌 위에는 황제가 앉았던 금박의 옥좌가 놓여 있다 태화전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 걸쳐 있는 금수교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였다 현인각은 태화전 왼쪽에 있는 응우옌 왕조의 원찰이다 앞뜰에 고, 인, 장, 영, 의, 순, 선, 우, 현이라고 쓰인 9개의 청동 세발솥이 놓여 있다 이들 세발솥은 왕조의 정통성과 부동성을 상징하며 각각 19세기에 왕위를 지켰던 황제들을 기려 주조하였다 높이 2m, 무게 2t인데 그 중에 중앙에 있는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솥이 초대 황제 지아롱제의 것이다 내부에는 각 황제의 위패가 안치되어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2021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