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22.03.23 영적 치매(미가 3:9-12)

수요22.03.23 영적 치매(미가 3:9-12)

영적 치매 2022년 3월 23일 본문 말씀: 미가 3:9-12 (3:9)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3: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3: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3:12)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의미 있게 만드신 이유는, 거기서 인간들의 최종 모습을 규정짓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이 그 끝 모습을 모릅니다 인간에게는 멈출 수 없는 본능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최종 도달지점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 최종 지점을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정해놓으시고 그 도시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시려고 합니다 마치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홈통을 통해서 아랫 쪽 지면으로 흘러가도록 유도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절대악과 절대선의 만남의 공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비참하게 되셔서 떠나버립니다 그러면 그동안 인간이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 덕택이었는데 그 은혜가 철수하게 되면 인간도 살 수 없는 곳이 됩니다 그것이 12절에 나옵니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될 줄을 모릅니다 더구나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줄로 모릅니다 그냥 인간들이 원하는 바는 11절 후반부에 나옵니다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즉 인간은 자신의 육신만 평안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육신은 평안함을 왜 좋게 보느냐 하며는, 그 육신을 ‘자기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육신을 통해서 ‘자아’라는 것을 형성시킵니다 ‘자아’라는 말은 ‘나’라는 뜻입니다 ‘나’는 이기성을 띠고 있습니다 모든 게 이기주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정신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소박하나마 나름대로 자신을 절대자이고 싶어합니다 신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분통을 떠트리는 이유는 육신이 자기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는데 있습니다 이 불만과 이 분노는 절대신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의 폭로입니다 자아는 육신을 원하는대로 다루고 보호하기 위해 조직을 꾀합니다 조직이란 곧 사회를 말합니다 조직을 자아의 신체화로 이해하는 겁니다 제 2의 자아처럼 여깁니다 조직에는 기본적으로 가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및 종교단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 곧 회사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국가가 있습니다 이 조직들 속에 들어와서는 자아는 그 조직 뒤에 숨기면서 조직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렇게 해서 제발 이 자아에 재앙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신체를 따집니다 왜냐하면 모든 신체는 인간 자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시온의 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실 곳이 살육의 현장이 되었다는 겁니다 실제적으로 신체적 피들이 흘려집니다 신체는 인간들이 자아성을 보다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신체 자체에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관여하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9:6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 그런데 인간들은 이 신체를 통해서 자아, 곧 선악 지식을 알아 자칭 신처럼 행세하고 싶어하는 자아가 아무런 재앙도 없이 평안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질문, 당신은 주님과 어떻게 연락을 취합니까? 여기에 대해서 그 사람이 이렇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연락하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면 그만이니까요” 둘째 질문, 당신은 예루살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그 사람은 이렇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나는 그저 여기서 조용하게 여생을 보내면 그만이니까요” 셋째 질문은, “당신은 당신을 누구인지 어떻게 압니까?” 여기에 대해서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삽니다 그저 평안하게 이대로 살면 최고입니다”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 치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자아의 평온함에 맞추는 그 삶의 방식 이외에 일체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 자신은 그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았으면 특별히 죄 지은 것도 없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멈추지 않는 질주 본능은 예루살렘은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내 가정이 지켜주고 내 교회가 지켜주고 내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그 생각으로 인하여 자신을 지켜주는 조직과 사회 속에서 예루살렘은 어떤 형편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그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보내어 필연적 결론나게 되는 예루살렘의 비극을 미리 이스라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누가복음 23:26-28에 보면,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예루살렘의 딸’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들 중의 여러 여인들은 예수님의 형편을 동정해서 울면서 따라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반대로 그들의 운명을 알려줍니다 “너희들은 너희에게 닥칠 슬픈 운명을 모르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그 조직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의식 자체가 예루살렘의 운명을 파멸로 이끕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하나님께서 잘 안 도와준다고 은밀하게 미워합니다 이처럼 자아중심의 불만은 심리적으로 내면화되고 이것이 사회성으로 나타나, 두령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마구 거침없이 잇속을 채우도록 하게 만든 겁니다 선지나는 그 두꺼운 조직 자체를 뜯어냅니다 그러면 그 안에 소복히 보호를 바라는 이기적인 자아들이 노출됩니다 그들은 결코 두령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로 인해 피해자가 아니라 주님에게 분노하는 가해자들입니다 구원은 일체 없습니다 이 사실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조직화된 사회 뒤에 숨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