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행 이근배(낭송 현정희)

겨울행 이근배(낭송 현정희)

겨울행              - 이근배- 대낮의 풍설(風雪)은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정처없다 산이거나 들이거나 나는 비틀걸음으로 떠다닌다쏟아지는 눈발이 앞을 가린다 눈발 속에서 초가집 한 채가 떠오른다 아궁이 앞에서 생솔을 때시는어머니어머니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그 곳에 가서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름날 당신의 적삼에 배이던 땀과 등잔불을 끈 어둠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타고 내리던 그 눈물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술 취한 듯 눈길을 갑니다 설해목(雪害木) 쓰러진 자리 생솔가지를 꺽던 눈밭의 당신의 언 발이 걸어가던 발자국이 남은 그 땅을 찾아서 갑니다 헌 누더기 옷으로도 추위를 못 가리시던어머니 연기 속에 눈 못 뜨고 때시던 생솔의, 타는 불꽃의, 저녁나절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지는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자꾸 취해서 비틀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