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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것에 매달릴 때만
욕망이 없으면 고민도 없고 고민이 없으면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으면 그것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런 욕망도 없는 무미건조한 존재가 이상향일까요? 2차원의 액면을 그대로 보면 3차원이 묵살됩니다. 그래서 이런 용어나 표현들은 그 맥락을 함께 살펴봐야 하고 그것이 이해를 해야 하는 공부에는 항상 어려움으로 다가오죠.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공부에서도 기본적인 욕구를 문제라고 하지는 않죠. 좀 어렵게 말해서 존재론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욕망의 정도가 심한 집착과 갈애입니다. 단순한 욕구와 복잡한 욕망, 집착적인 갈애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액면 그대로를 말하는 것으로는 기준을 설정할 수 없습니다. 모두 맥락을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죠. 그리고 사람마다 카르마가 모두 달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복잡한 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운명에서 치명적으로 업장을 드리우는 것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은 지혜롭게 분별하는 것은 수행의 여정에서 중요한 갈림길이 되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단순화해서 정리하는 것이 이롭습니다. 뭔가 복잡하면 뭔가 달라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매달릴 때만 거기에 수고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고로움만 보고 내가 매달려 있는 것을 잘 못 봅니다. 아무것에도 매달리지 않으면 어떤 수고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데 자세히 보면 주렁주렁 짐을 매달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수고를 덜자고 무게를 더하는 것이죠. 덜어야 하는데 더하는 겁니다. 의외로 많은 경우에 무게를 더하는 이런 행위를 수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봅니다. 여기에는 관념으로 하는 행위이든 실천이라고 여기는 행동이든 그 무게의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이 모든 생각과 행위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모든 수고로움은 꿈 속의 일입니다. 우리가 생각이든 감정이든 그 어떤 층위에서든 고통을 받는 것은 생각과 감정이 기대에 미달해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발생 자체가 허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발생한 고통을 관찰하면서 그 모순이나 부조리, 허위에서 비롯되는 슬픔과 괴로움을 명상하는 것은 그것을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통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생존하려는 노력에서가 아니라 죽음을 직면하는 곳에서 깨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허상은 가짜라는 액면의 진실이 아니라 그것이 꿈이라는 상위차원에서 알려집니다. 하위 차원이 깨어져야 상위 차원에서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집착이 두려움의 결과이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깨달음의 결과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과 사건이 찰나적인 허상을 알려주는 연기법이 바로 욕망의 허상을 보여주는 것인 이유는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두려움조차 실상이 아니며 그저 집착의 결과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는 연습한다고 오지 않습니다. 허상을 알기 전에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깨어있기 위해서, 각성하기 위해서 연기법이 필요하다고 계속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갈망은 불충분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이 일체개고의 고통입니다. 참되지 않기 때문에 갈망이 생기고 갈망이 고통을 계속 굴립니다. 고통은 자연스럽게 스노우 볼이 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참된 존재인 그리스도를 알 때, 신기하게도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 됩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선사의 자연스러움은 허상에 매달린 내가 떨어질 때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참나 깨달음을 기다린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나는 이미 지금 여기에 있는데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요? 천국이 이미 도래했지만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합니다. 단지 보기만 하면 됩니다. 눈앞에 항상 있습니다. 형상과 실체에 매달린 시선을 거두기만 하면 됩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장님인 상태라 못 볼 뿐입니다. 형상과 실체가 허상이라는 가르침은 내가 매달린 갈애와 번뇌조차 허상임을 알려줍니다. 중력을 벗어나면 무게가 없습니다. 깨어나서 보면 없는 것에 매달릴 수 없고 매달아도 무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