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역_이승혁 / 원곡 나훈아 / 논산역 / 부황역(폐역)

#고향역_이승혁 / 원곡 나훈아 / 논산역 / 부황역(폐역)

‪@승혁갤러리SHgallery‬ 배경 : 논산역 부황역(폐역) 고향역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노래의 탄생 배경이 재미있다. 당시 무명 작곡가인 임종수는 많은 곡들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 전북 순창에서 서울에 올라와 힘들게 고생하는 자신의 처량한 처지를 빗대어 ‘차창에 어린 모습’을 만들었다. 그는 성공하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도 성공하는 방법은 유명 가수에게 곡을 줘서 히트하는 것 뿐이었다. 당시 남자 인기가수는 남진, 나훈아, 박일남, 남상규, 안다성, 남일해, 오기택, 최희준 등이 있었다. 이들 가수들 중에서 이 노래를 나훈아가 부르면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훈아가 전속해 있는 청계천 8가 평화시장 건너편 오아시스레코드사를 무작정 찾아간다. 그러나 사무실 사람들은 임종수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아시스레코드사를 매일 방문해 사무실을 지켰다. 그러기를 석 달이 지났다. 어느 날 나훈아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임종수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벌떡 일어났다. 나훈아의 어깨를 잡았다. “와, 왜?” 나훈아의 첫 반응이었다. 그는 준비한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저는 무명 작곡가 임종수라고 합니다. 나훈아 님을 만나려고 3개월 동안 기다렸습니다. 나훈아 님에게 정말 주고 싶은 곡이 있습니다. 5분이면 충분합니다. 딱 5분만 저에게 시간을 내주십시오.” 나훈아는 그를 따라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임종수는 “먼저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등 뒤에 서있던 나훈아가 앞으로 와 그의 얼굴을 쓱 쳐다보았다. “임 선생님, 지보다 더 노래를 잘하시네예. 한 번만 더 해주이소.” 임종수는 나훈아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차창에 어린모습 떠돌다 머무는 낯선 타향에 단 한번 정을 준 그 사람을 홀로 두고서 혼자만 몸을 실은 열차는 외로워 눈감아도 떠오르는 차창에 어린 모습 임종수는 다시 1절을 불렀다. 그러자 나훈아는 “한 번만 더 해주이소”라고 말했다. 노래를 세 번 듣고 난 나훈아는 “제가 한번 따라해 보겠심니더”라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악보에 사인을 했다. 녹음하겠다는 뜻이었다. 1971년 3월 9일. 나훈아가 이 노래를 녹음했다. 임종수가 그 다음날 레코드사를 찾아갔다. ‘차창에 어린 모습’이 타이틀곡으로 편집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사무실 직원들이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막상 5월에 음반이 나왔을 때 이 곡은 타이틀곡이 아닌 세 번째 곡으로 밀려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일이 일어났다. 가사가 처량해서 정부가 주도하는 의식개혁운동에 맞지 않는다고 방송 불가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노래는 방송 한 번 타지 못하고 사라지는 비운의 신세가 됐다. 임종수는 여전히 무명 작곡가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1971년 12월 말, 임종수는 오아시스레코드사에 들렀다가 우연히 다시 나훈아를 만난다. 그런데 나훈아가 뜻밖의 제안을 하게 된다. 임 선생님, ‘차창에 어린 모습’이 너무 아깝심니더. 어차피 방송도 안 나갔으니 슬픈 가사를 떼고 건전한 가사로 고쳐 주이소. 리듬도 트로트에서 고고로 바꿔주시고예. 고고로 바꾸면 경쾌하게 들리지 않겠어예.” 집에 돌아온 임종수는 노랫말 수정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 순간 이리(지금의 익산) 남성중학교 다닐 때 황등역에서 이리역까지 통학했던 기억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당시 그는 익산군 삼기면 형님 집에서 몇 개의 산등성이를 넘어 황등역으로 가 통학 열차를 타야했다. 기찻길 옆에 핀 코스모스를 보면서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났다. 일단 제목을 ‘고향역’으로 정하고 노랫말을 쓰고 곡을 다듬었다. 1972년 2월 8일. 나훈아는 새롭게 고친 ‘고향역’을 취입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타이틀곡이 아니어서 또다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실망하던 임종수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나훈아가 전속사를 지구레코드사로 옮긴 것이다. 지구레코드사에서 ‘녹슬은 기찻길’을 발매하자, 위기를 느낀 오아시스레코드사는 맞불을 놓기 위해 묘수를 짜낸다. 나훈아의 앨범 중 타이틀곡을 제외하고 알려지지 않은 노래 ‘베스트 10’ 음반을 내놓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고향역’이 타이틀곡이었다. 음반이 출시되자 전국에서 ‘코스모스 피어있는~’ 노래가 울려퍼져 나갔다. ‘고향역’은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동한 출향인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빅히트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