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확신사이에 선 쫌생이   "창세기 15장 1~6, 16:1~2절"

불신과 확신사이에 선 쫌생이 "창세기 15장 1~6, 16:1~2절"

불신과 확신사이에 선 쫌생이 창세기 15장 1~6, 16:1~2절 💻 꼭두새벽묵상 No 1520 최근들어 어금니사이에 음식물이 자꾸 끼어서 많은 불편을 느끼게 되었다 치실을 사용해도 안되고 양치질을 해도 안되고 뭘 해도 치아 사이에 끼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치과를 다녀올 수밖에 없었는데 치과원장님은 이빨 하나가 깨진 자리가 커서 음식물이 잘 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며 다시 이빨을 떼워주셨는데 그래도 뭔가 계속 불편하다 자꾸 혀가 그쪽으로 가게 되고 어떻게 해서든 빼내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이물질이 빠지면 좀 시원하겠는데 아무래도 빠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빠진 뒤에 보면 별것 아닌 것 일 텐데 그 작은 이물질이 이렇게도 신경이 쓰이게 한다 덩달아 요즘 들어 눈마저 침침해진다 새벽마다 성경을 읽을 때면 돋보기를 끼지 않아도 잘 보여서 감사한데 문제는 묵상 글을 적으려면 컴퓨터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과 원장님도 자기도 눈이 노안이라 컴퓨터 화면을 큰 것을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안경을 끼면 잘 보이지만 얼굴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실내에서는 주로 안경을 벗어 둘 때가 많다 야외 활동 할 때는 안경을 늘상 착용하지만 실내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적을 때면 안경을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한 해 한 해 세월이 지나가면서 불편해지는 것이 많아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의 삶에는 우연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응답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연에 붙들린 인생이기 되기보다 응답과 응답해주실 하나님께 꼭 붙들려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동안 치아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물처럼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길 기도한다 이렇게 글을 적어 놓고 나니 아내의 입과 얼굴이 금방 떠오른다 말은 안했지만 나한테 좀 잘하세요 그럴 것 같기 때문이다 아내는 지금 본당 제일 뒤 장의자에서 잠을 자고 있다 혹시라도 잠이 깰까봐 등도 조그마한 스텐드를 켜놓고 성경을 보았고 묵상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컴퓨터 자판도 매우 조심스럽게 누르며 한 글자 한 글자 적고 있다 설교자이전에 남편이기에 간간이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래도 방해가 된다는 것 보다 함께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오늘 새벽에는 나처럼 아내 앞에 서면 작아질 수밖에 없는 남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남자는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복의 근윈이 된 사람이며 흔히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남자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창세기 12장에서 약속을 받았지만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만다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창세기 20장 그랄왕 앞에서도 아내를 누이라고 제 살자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오늘 창세기 16장에 오면 이런 신랑한테 부인 사래는 자기가 출산을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남편 아브람에게 자신의 여종인 하갈에게 들어가라고 합니다 큰 힘앞에서 자기를 누이라고 속이는 쫄보 남편이 뭐가 이쁘다고 그러는지 그녀는 여인으로서 임신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운지 자신의 여종과의 동침을 허락합니다 창세기 15장4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람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브람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성경은 15장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보인 아브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그런데 16장에 넘어오면서 한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님에 대해서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사래'가 등장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막힌 태의 문을 여시고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사래가 왜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래 역시 믿음으로 아브람과 함께 떠나온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믿음으로 시작했던 여정은 점점 현실을 마주하자 퇴색되기 시작하고 마는 것이다 설상가상 여성의 생리마저 끊어져 버렸다 이젠 정말 소망이 없어진 사래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자신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부인은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아무래도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브람은 이런 것은 부인의 말을 참 잘 듣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람 정도되면 적어도 하나님께서 자기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사래를 통하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충분히 이해하고 믿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갈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부부가 한 몸이란 사실을 아브람과 사래는 바로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몸인데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남자의 실수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갈에게 들어가라고 했을 때 전혀 거절의 모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부부가운데는 15장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도 없습니다 엊그제 주일예배에 아멘 했지만 이번 주 또 우리 삶가운데 그리 살지 못하는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상의 방법이 앞서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에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자신의 몸종을 통해서 아이를 낳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씨받이'의 풍습과 비슷합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낳아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래가 그렇게 하더라도 누구 하나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들 집안 윗대로 올라가면 할머니가 두 분인 증조할머니가 두 분인 집이 한 두 집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법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상의 방법이 있는 것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그것도 교회에서 버젓이 행해지더라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 문화가 그렇고, 세상 풍조가 그러니, 어쩔 수 없으니, 그게 좀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믿음의 여정가운데 하나님의 방법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인이 몸종에게 들어가라고 했을 때 이 남자는 부인에게 제대로 말을 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 왜요 이 남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인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지 못하고 하갈에게 들어간 이 남자의 모습이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슬픈 현실이며 우리 역시 범하기 쉬운 실수라 생각됩니다 마땅히 가르쳐야 할 이가 가르침에 실패하면 어떤 결과를 맺게 되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 이 방법이 옳은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우선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남자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아브람 역시 사래의 말을 따랐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연하듯 따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향해 가고 있으니 눈물 나는 일입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무리 그럴싸 해도 하나님의 방법이 정답입니다 세상의 방법이 좋아 보일 때 바로 그 때를 잘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너 아직도 교회를 다녀??" 이 말 이랍니다 이 조크속에 세상이 주는 메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영향력을 잃고 역사의 갈림길에 해가 되고 짐이 되어버린 것 같아 너무 슬프다 복음은 항상 소수였고 좁은 길이라던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정말 주님이 말씀하신 좁고 협착하지만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의 삶에는 결코 우연이 없고, 하나님의 응답만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오늘도 응답의 기쁨이 넘치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