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남평교회, 100년 교회 성지순례(116)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남평2로 32-7 남평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복음주의 개혁신학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교회입니다 남평지방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사람은 피터스입니다 그는 러시아 출신으로 1896년 일본에서 복음을 영접한 후 대영성서공회 매서인으로 한국에 와서 서울과 경기지역에 이어 전라남도에서도 기독교 서적을 판매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1897년 3월부터 유진 벨 선교사와 변창연 조사가 전한 복음을 영접한 남평지역 교인들은 구소리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구소리교회에 출석하던 남평지역의 서관서, 최익삼, 조치일 등 7-8명의 교우들은 1900년에 남평시장터의 한 가옥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이 증가하여 30여 명에 이르자 교인들은 1905년 10월에 대교리 현 교회터에 초가 예배처소를 마련했습니다 남평교회는 1942년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전남노회가 해산되고 일본에 의해 전남교구로 통폐합되자 전남교구를 탈퇴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 결과 목회자는 피신하고, 교회는 폐쇄당해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인인 모리 성도가 남평교회를 다시 열고 직접 말씀을 전함으로써 교인들은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남평교회 입구를 들어서면 예배당 왼쪽에 2005년 3월 3일에 세운 커다란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해방 이후 남한에 하나밖에 없는 조선신학교에서 가르친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한 재학생 51인이 신앙동지회를 1946년에 조직하여 194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3회 총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보수신학을 확립 전승하였으며 보수신학자 박형룡 박사와 함께 한국장로교회 보수신학의 초석을 놓았다 신앙동지회가 1953년 7월에 남평교회에서 복음주의협회를 조직하여 지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보수신학과 합동 교단의 모체가 되었다 남평교회는 설립 105주년을 기념하여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여기 기념석을 세우다 ” 1953년 7월 24일에 열린 51인 신앙동지회 하계수련회에서 한국복음주의협회(NAE)가 조직되어 보수주의신학을 공고히 했습니다 남평교회는 1950년에 발발한 6 25 전쟁으로 인해 7월 24일 예배가 중단되었다가 인민군이 퇴각한 10월 8일 다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엄두섭 담임 목사는 전쟁 당시의 상황을 일기로 남겼습니다 1984년 3월에서 1986년 3월까지 광주신학교(합동) 수업을 남평교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2003년 10월 26일에는 당회의 결의로 남평교회 설립일을 1900년으로 정하고 11월 22일 교회 설립 103주년 기념 감사예배 및 교회 건축(4번째 예배당) 봉헌예배를 드렸습니다 2022년 5월 2일에 한국기독교역사 사적지 제36호 지정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참고문헌] 1 남평교회 103년사, 2004년 [음원출처] : 크리스찬 BG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