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 69주년 순교지 탐방, 전 성도 순교한 야월교회

6. 25 69주년 순교지 탐방, 전 성도 순교한 야월교회

[C채널 매거진 굿데이] 2019년 6월 28일 C채널 뉴스 전라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야월교회는 6.25 전쟁 당시 모든 성도가 순교했습니다. 한 교회의 모든 성도가 순교한 것은 전 세계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커다란 사건인데요. 야월교회에 얽힌 순교의 이야기를 변현준 기자가 전합니다. 전라남도 영광군 야월리에 자리잡은 붉은색 벽돌 건물. 전쟁의 아픔과 순교의 역사가 서려있는 야월교회입니다. 야월교회는 지난 1908년, 복음을 전하러 전라도로 입항한 유진벨 선교사로 인해 세워졌습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신앙을 가졌던 야월교회 성도들. 일제강점기에는 복음을 중심으로 한 애국계몽 운동을 이어가다 광복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좌와 우라는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 속, 6.25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 초반, 공산세력이 한반도를 장악하는 듯 했으나 인천상륙 작전과 9.28 서울 수복으로 역전된 전세. 1950년 9월 29일, 국군과 유엔군이 영광군까지 진입하자, 야월교회 성도들과 주민들은 대대적인 국군환영대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북한 군들은 가혹한 보복을 이어갔습니다. 최종한 야월교회 원로장로는 “북한군들이 밤마다 산에서 내려와 환영대회에 참석한 주민들을 학살했다”고 밝혔습니다. int 최종한 원로장로 / 야월교회, 당시 야월리 주민 캄캄한 밤이 오면 한 가족들을 어린 아이까지 새끼줄로 꽁꽁 묶어서 바다 쪽 모래밭으로 끌고 갔습니다 온 가족들이 다 구덩이에 끌려가서 (매장됐습니다) 야월교회는 두 달에 걸쳐 모든 성도가 순교하게 됩니다. 북한군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 했지만 야월교회 성도 65명은 목숨을 포기하는 것으로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북한군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INT 최종한 원로장로 / 야월교회, 당시 야월리 주민 도망가려고 생각을 안했어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오히려 공산당에게도 당신들도 예수님 믿고 우리 같이 천국으로 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한 마디도 내가 예수 안믿는다 내가 교회 안다닌다 이런 말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그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다 순교를 당하셨어요 전 세계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 성도의 순교. 죽음을 불사한 야월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오늘 날의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STD 변현준 기자 예수를 부인하기만 하면 살려주겠다는 북한군 앞에서 야월교회 교인들은 의연하게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북한군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오늘은 이러한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한국교회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씨채널 뉴스 변현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