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일곱 딸 셋의 죽음, 욥의 고난과 갑절의 복 (욥기 42장 10-13절) 꿈의교회 김을수 목사 180121
욥기는 아들 일곱 딸 셋으로 시작하여(욥 1:2) 다시 아들 일곱 딸 셋으로 끝나는(요 42:13) 반전 드라마입니다. 욥의 행위를 볼까요? 욥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과연 욥은 온 재산이 날아가고 십남매가 죽고 몸에 악창이 났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본 모습은 곧 드러났습니다. 세 친구가 와서 욥의 불신앙을 지적하자 결국 자기의 의를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그 과정에서 인생무상을 피력하게 되고 결국 내세관마저 모호함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죽이시리니 소망이 없다 하다가(욥 13:15), 내 가죽이 에워쌈을 당해도 자기는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하며(욥 19:26), 하나님이 자기를 단련하신 후에 순금 같이 되어 나온다고 하다가(욥 23:10), 이제 자기는 모든 짐승들처럼 죽을 것이라고 한탄한 것입니다(욥 30:23). 이 때 예수님 모형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욥 33:23-24.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메리쯔]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코페르]을 얻었다 하시리라” 여기서 대속물은 노아 방주에 안팎으로 바른 역청과 같은 단어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중보자와 대속물 안에서 해결됩니다. 욥과 세 친구들의 신앙 면모는 엘리후의 말을 통해 드러납니다. 욥 32:2하-3.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욥은 환난 후 자기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했고 세 친구들은 욥의 사정은 살피지 않고 오직 그를 정죄하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 솔직한 반면 세 친구들은 권선징악으로 무장되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것입니다. 욥 42:7하.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빌닷과 소발)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저 유명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도 하나님 말씀이 아닌 빌닷의 말입니다. 드디어 욥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이 나옵니다. 욥 38:1-2.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그러자 욥도 마침내 자신의 무지함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했습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겠나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은 회개합니다. 욥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은 육의 눈으로 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골 1:15). 욥은 예수님의 모형으로 나타난 엘리후의 말과 하나님의 직접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욥이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형제와 자매와 친지들이 찾아와서 그를 위로하고 위로금을 전달합니다. 욥은 말년에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짐승들은 갑절인데 자녀는 갑절이 아니라 전과 같이 아들 일곱 딸 셋뿐입니다. 여기에 욥기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십남매를 가슴에 묻은 욥이 그 후 140년을 맘 편히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운 십남매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십남매의 부활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욥이 만나게 된 엘리후는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리스도는 천사장이시며(마 25:31, 살전 4:16) 중보자이십니다(딤전 2:5). 욥을 건져서 멸망에 내려가지 않게 하신 대속물이십니다. 욥은 고난 중에 세 친구를 만나 오히려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보였지만 마침내 엘리후를 만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무지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중보자 엘리후를 만난 결과입니다. 엘리후는 ‘그는 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엘리후를 만나기 전의 욥과 그를 만나 그의 말을 들은 욥, 상황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과의 대면도 성사되었습니다. 자신의 자식만 위해 살던 욥은 자기를 정죄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듣기만 하다가 하나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욥이 애지중지하던 십남매, 그들은 비명횡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살리실 십남매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은 고난을 통한 수확입니다. 현실주의자였던 욥이 내세의 소망을 가진 신앙인으로 거듭난 것은 엘리후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요 5:39). 욥은 고난의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죽은 십남매를 재회할 다음 세상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주 안에서의 고난은 갑절 축복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