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3대 대첩, 강감찬, 강민첨, 김종현의 귀주대첩 #01
2편 링크 : • 한반도 3대 대첩, 강감찬, 강민첨, 김종현의 귀주대첩 #02 3편 링크 : • 한반도 3대 대첩, 강감찬, 강민첨, 김종현의 귀주대첩 #03 고려는 평장사 강감찬을 상원수로 봉하고, 대장군 강민첨을 원수로, 병마판관에 김종현을 임명, 20만 8천의 대군으로 소배압을 막도록 하였다. 고려군의 강민첨 대장군은 압록강 유역 흥화진의 삼교천(三橋川)에서 거란군과 맞서 싸워 승전하였으나(흥화진 전투), 거란군은 수도인 개경을 목표로 우회하여 계속 남하하였다. 하지만 거란군은 자주에 있는 내구산에서 추격전을 벌인 강민첨 대장군의 기병 1만 4천 명에게 대패하고, 대동강 가의 마탄에서도 시랑 조원에게 대패하면서 1만 명의 군사를 잃게 된다. 결국 수도 개경에서 약 100리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신은현에 도착한 거란군은, 또 한번 고려군의 청야 작전에 당하고 만다. 개경에 정찰병을 보냈지만, 개경의 방어가 왕성하다는 첩보를 들은 소배압은 후퇴를 결심하게 된다. 추격하는 고려군을 막기 위해 약 300명 정도의 기병대를 배치해 두었지만, 이들은 금교역에서 고려군의 습격에 전멸하고 만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퇴각하던 거란군은, 연주에서 또다시 강민첨 대장군의 기병에게 대패한다. 며칠 뒤, 거란군은 귀주를 지나게 되었다. 상원수 강감찬은 귀주에서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양군은 힘을 다해 싸웠고, 쉽사리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때마침 개경에서 거란군을 추격하며 올라온 김종현의 철기 기마부대가 거란군의 후진을 습격하여 적을 혼란에 빠뜨렸고 연주에서 승리한 강민첨 대장군의 기병 1만 4천 명이 정주 방향에서 귀주에 도착해서 거란의 중심부로 전원 돌격하여 고려본진과 함께 거란군을 완전포위하고 순식간에 섬멸시키니, 거란군은 완전히 참패하고 북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원수 강민첨 대장군과 기병이 반령까지 거란군을 추격, 격퇴하여 살아돌아간 거란군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