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용 땅굴 사건
1974년, 비무장지대에서 땅굴이 발견됩니다 군사분계선 남쪽을 순찰하던 이상록 일병은 지표면에서 증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함께 있던 구정섭 중사는 땅을 파 보라고 지시합니다 구중사는 베트남전 복무 경험이 있어서, 보자마자 땅굴임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굴착 작업을 시작하니 북한 초소에서 기관총 사격을 해왔습니다 이에 우리 군도 응사했고, 교전은 1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이 교전으로 우리 군 3명이 전사했습니다 보름 후, 한국군 2명, 미군 6명으로 편성된 수색조가 다시 땅굴을 수색합니다 수색 중 북한군이 매설한 부비트랩에 의해 폭발이 일어났고, 수색중이던 김학철 소령과 미 해군 벨린저 중령이 순직했습니다 땅굴은 너비 90cm, 높이 1 2m, 길이 3 5km로, 서울에서 6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1시간에 1개 연대의 무장병력이 지나갈 수 있고, 중화기와 대포도 운반할 수 있는 규모의 땅굴이었습니다 이후 1990년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땅굴은 총 4개이며, 최전선에 위치한 1땅굴을 제외한 2,3,4 땅굴은 관광지로 만들어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