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지연전 3편, 부산에 도착하면 대전을 향해 이동하라. 대대는 1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여 최대한 북쪽에서 적을 저지하라.
북한군이 남침을 시작한 6월 25일, 도쿄의 미극동군사령부는 ‘북한군의 남침 병력은 4개 사단과 3개 경비여단으로 총 병력 7만 명에 전차 70대’라고 발표했으나, 맥아더 원수가 한강방어선을 시찰한 이후에는 ‘북한군의 남침병력은 6개 사단과 3개 경비여단, 그리고 200대에 가까운 소련제 전차’라고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정보판단을 토대로 맥아더 원수는 미 지상군 투입을 건의했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했습니다. 당시 미극동군사령부와 예하 부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능력을 매우 과소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은 훈련이 제대로 안된 미개한 군대로 미 지상군이 나타나기만 하면 도망갈 것이다. 반면 한국군은 사기가 오를 것이다.’라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기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를 문제 삼아 일부 역사가들은 맥아더 원수가 북한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전투준비가 안된 소규모 부대를 축차적으로 투입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맥아더 원수는 회고록에서 “미 지상군 부대가 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로 인해 적 사령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적 사령관으로 하여금 신중하고 완만한 행동을 취하게 한다는 전략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라고 기술하여 소규모 부대의 축차적 투입은 북한군 공격속도를 지연시키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술회했습니다. 6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이 미 지상군 투입을 승인하자, 맥아더 원수는 주일 미군 중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던 미 24사단을 즉각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극동군사령부 작전부장 라이트 소장이 주도하는 합동전략계획수립단에 자신의 인천상륙작전 구상을 상세한 작전계획으로 수립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핵심내용은 ‘미 24사단과 25사단 예하 1개 연대전투단으로 북한군의 남침을 최대한 북쪽에서 저지하고, 미 해병대와 1기병사단을 7월 22일에 인천으로 상륙시켜 북한군의 병참선을 차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7월 6일에 1기병사단장 게이 소장을 불러 이 계획에 대해 설명을 했고, 이 자리에서 미극동군사령부 정보부장인 윌로비 소장은 게이 소장에게 “당신은 최대한으로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당신의 상륙이 늦어지면 서울을 점령하고 북상하는 딘 소장의 24사단 후미에 상륙하게 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맥아더 원수와 미극동군사령부는 딘 소장의 미 24사단이 북한군을 한강 북쪽으로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6.25전쟁에 대한 많은 영상이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 조차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도 조차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형편입니다. 6.25전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참전했던 국군과 미군의 회고록, 미국 논픽션 전쟁사 작가의 간행물, 중공군 참전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가장 정확한 6.25전쟁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상처를 남긴 채 종전이 아닌 휴전의 형태로 정지된 비극적 전쟁입니다. 자유진영 전사자는 한국군 149,005명,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40,306명 등 189,311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산진영은 북한 294,000명, 중공 197,653명, 소련 315명 등 491,968명이 전사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을 포함하여 5,991,48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5,991,484명의 희생자 중 5,218,480명이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인명 피해로만 본다면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려-몽골 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외전쟁을 합친 것 보다 많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참고자료] 6.25전쟁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주요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영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군의 한국전쟁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낙동강(류형석, 플래닛미디어), 6.25전쟁 징비록(백선엽, 책밭),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권주혁, 지식산업사), 6.25전쟁과중공군(박실, 정미디어), 6.25전쟁(존 톨랜드, 바음),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헬버스템, 살림), 이런전쟁(T. R. 페렌바크, 플래닛미디어), 6.25전쟁에서의 소부대 전투기술(러셀 구겔러, 북갤러리), 중국군의 한국전쟁사(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한국전쟁(왕수쩡, 글항아리),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학지, 한국학술정보), 항미원조(리펑, 다른생각) [영상 출처 : 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