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Pick!] '자기 정치'에 김구 이용한 태영호
1948년 광복 3주년을 맞은 한반도에는 다시 짙은 먹구름이 끼고 있었습니다 그 전 해 11월 14일 열린 UN 총회에서, 1948년 3월31일 독립 한국의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한다고 결의했지만 북한이 UN위원단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분단은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었습니다 UN은 결국 같은 해 8월15일 남한만 단독정부를 수립한다는 일정에 따라 1948년 남한에서는 5월10일 총선거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탄해마지 않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석 백범 김구와 부주석 김규식은 그해 2월16일 김일성에게 남북 협상 제안 서신을 발송합니다 백범이 통일정부의 정당성을 강조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낸 때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그러자 북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준비 중이던 김일성은 역제안을 합니다 4월 초에 남한의 단독정부를 반대하는 17개 정당·사회단체가 평양을 방문해 정치협상을 하자고 제안한 거죠 주도권을 본인이 쥐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김일성의 직접적인 목표는 백범이었습니다 백범의 정치적 비중을 이용해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규탄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이미 준비를 마친 북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정당화하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애초부터 통일정부 수립 의지는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백범은 김일성의 제안에 화답합니다 어떻게든 민족의 분열을 막고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의지에서 나온 결단이었습니다 이렇게 광복 후 남북한 간 첫 '남북연석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4월 19일 저녁 6시 평양시 모란봉 극장에서 연석회의의 막이 올랐습니다 북측에서는 15개 정당·단체 대표 300명이 참석했고, 남쪽에서는 31개 정당·단체 대표 245명이 참석했습니다 총 참가자 695명으로, 인원도 너무 많았지만 회의 자체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지정된 대표들이 미리 작성해 온 원고를 10분 정도씩 읽고 내려오는 식이었는데 김일성에 대한 찬양·선전 일색에다가 이승만과 남한 단독 정부에 대한 비판과 반대만 난무했습니다 김일성과 북측이 통합정부 수립에 대한 의지가 남한의 이승만 만큼이나 없다는 걸 확인한 백범 등은 김일성에게 별도의 회담을 요구합니다 결국 남북연석회의에 이어 열린 남북지도자협의회에서 남북은 각각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공동성명서’를 채택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이끌어 내지 못하고 결국 남한에서는 1948년 8월15일, 북한에서는 같은 해 9월9일에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담을 선제한 백범과 김규식 등의 노력으로 남북지도자 간의 직접협상을 통해 통일문제의 해결을 위한 물꼬를 텄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백범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는 태 의원의 주장은 백범이 김일성의 제안으로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는 점에 근거합니다 이 논리는 2000년대 들어 머리를 든 이승만 옹호주의자들의 주장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태 의원의 말은, 김일성의 통일전선전략과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주장은 그 논거가 같다는 얘기가 됩니다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남북 협상을 먼저 제안한 사람은 백범이었습니다 김일성의 얄팍한 정치적 계산과 알량한 자존심 세우기를 간파하고도 연석회의 제안을 수용한 것은 그의 오랜 신념이자 철학이었던 민족자주통일론의 발로였습니다 백범의 민족자주통일론은 해방 이전 1919년 임정이 수립되면서 지향한 '자주독립국가' 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주독립국가라는 이상은 민족에 의한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해서라면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 전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는 민족공동체의식입니다 1930년 임정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결성된 한국독립당(한독당)의 당의이기도 했지요 임정과 한독당이 1941년 11월 발표한 '대한민국건국강령'에도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백범에 대해 "최고 가치를 민족에 두고, 통합·통일운동에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임시정부 시절 좌우합작을 일구어냈고, 환국한 뒤에는 통일국가 수립운동에 몸을 던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식이지요 그렇다면, 태 의원은 왜 여당 지도부에 입성한 직후 백범을 들고 나왔을까? 지난 4월18일 공개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좌파에 의해서 잘못 쓰인 현대사를 다시 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며 "선거가 끝나면 기회가 될 때마다 역사적 사실을 강하게 말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월간조선'은 "이 같은 ‘소신’을 국민의힘 지지층이 긍정적으로 평가해 그를 ‘당 지도부’로 선택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결국 태 의원이 백범을 비하하고 역사를 왜곡한 저의는, 결국 지도부 입성 후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하기 위해 백범을 이용 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아니었을까요? ● 제작진 - 기획: 미디어토마토 - 구성 취재: 최기철 부장 - 연출: 방유진 PD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버튼 눌러주세요! 감사합니다 미디어토마토 뉴스토마토 페이스북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