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명인[풀영상] - 조갑녀 민살풀이춤 👍🏻 우리의 춤을 지키는 남원의 명인

정명희 명인[풀영상] - 조갑녀 민살풀이춤 👍🏻 우리의 춤을 지키는 남원의 명인

정명희 명인 - 조갑녀 전통춤 보존회 대표 - 조갑녀 명인의 6녀 1931년 제1회 춘향제 당시 9세의 예기(藝妓)가 광한루원 앞에서 공연한 화무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1941년 제11회 춘향제까지 이 예기는 매년 화무, 승무, 민살풀이를 추며 춘향제의 명물로 떠올랐다 그 손짓과 몸짓을본 사람들은 ‘춤은 조갑녀’라는 말을 남겼다 조갑녀 명인은 '이장선 명인'의 마지막 제자였다 이장선 명인은 조선의 궁중 음악기관인 '장악원'(현 국립국악원 정도 )에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진연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조갑녀 명인은 1923년 남원 권번의 악기 선생이었던 부친 조기환 씨의 다섯 딸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고모인 조기화 씨도 남원 권번의 제일가는 예기였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7살부터 예기가 되었다 나라가 망하자 고향인 곡성 옥과로 내려온 이장선 명인(1866~1939)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스승은 임금 앞에서 춤을 췄던 명인으로 어느 날 남원 권번에 왔다 춤 솜씨를 흉내 내던 어린 조 명인의 인상과 자태를 보고 제자로 거뒀다 이장선 명인에게서 춤을 배운 조갑녀 명인은 이후 '남원의 전설'이 되었다 조갑녀 명인은 자신의 제자인 딸들에게 “우리 춤은 반드시 무거워야 가치가 있다”며 “그 무거움 속에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으니 아무리 좋은 가락도 무겁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 춤은 속 멋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 어지간히 해서 잘 춘다는 말을 듣기 힘들다”며 “춤은 곧 마음이다 몸으로 배워 마음으로 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춤 #민살풀이춤 #여행을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