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조형예술고 개교 50주년 기념 동문전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 50주년 기념 전시 예술의 세 자매, 이념과 형상 그리고 상상력 고충환 | 미술평론가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가 개교한 지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동문 중심의 전시는 있었지만, 개교 50주년을 맞는 이번 전시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전체 기수에 해당하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가 예상된다. 역사적 전통과 연륜이 뒷받침되는 것이지만, 그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들도 적지 않고, 여기에 현재 교육계며 산업계 전반에서 중추적 기능을 도맡아 하는 위인들도 적지 않아서 사뭇 그 성과가 기대된다. 특이한 것은 학교명에 조형과 예술이 다 들어있는 것이 주목된다. 예술을 문학과 공연예술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그리고 조형예술을 파인아트 중심의 협의 개념으로 구분하는 기왕의 구분법을 따른 것일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파인아트 내부로 한정해 본다면, 조형이 예술보다 큰 개념인 만큼 지금은 예술에서 조형으로 편재며 개념 축이 옮아가고 있는 현실이며, 그런 만큼 예술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대적으로 더 포괄적이고 유연한 폭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게도 된다. 참고로 지금은 예술을 공연예술과 조형예술로 구분하지만, 그전에는 예술을 시간예술과 공간예술로 구분했고, 그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예 예술과 기술이 하나의 뿌리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간주 되었다. 지금 통용되는 용어로 치자면 기예가 될 것이고, 일반적인 용어로는 공예가 여기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의 전신이, 그러므로 그 뿌리가 부산공예학교였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교명의 용법을 중심으로 보자면 공예 그러므로 생활예술 중심에서 예술 그러므로 파인아트 중심으로, 그리고 재차 사진과 영상 그리고 디자인을 포함하는 조형 중심으로 확장하고 심화해온 것이라고 해도 좋다. 돌이켜보면, 사실상 이 모든 학제며 학과를 두루 포괄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그렇게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는 원래 부산공예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 11월 설립을 인가받은 후, 1974년 3월에 첫 입학생을 받으면서 학교가 개교되었다. 당시 부산역과 부산진역 사이 기찻길 곁에 부지를 튼 학교의 학과를 보면 각 석공반, 도자반, 염색반, 목칠반, 표구반, 사포반으로 구성되었는데, 지금 용법으로 치자면 석조, 세라믹, 염색 디자인, 목가구, 한국화, 금속공예에 해당한다. 이런 전공과목과 함께 조소과와 회화 실기실이 따로 마련돼 있어서 사실상 미술대학의 편재며 학과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1980년 부산공예고등학교 설립을 인가받았는데, 당시 학과를 보면, 각 도자공예과, 목칠공예과, 사진인쇄과, 의장도안과, 회화과로 구성되며, 지금으로 치자면 도자공예, 목가구, 사진, 산업디자인, 그리고 회화과에 해당한다. 지금은 지자체마다 예고(예술고등학교)가 설립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제외하면 예고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던 터라, 선구적인 일면이 있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1998년 부산디자인고등학교로 개편하면서, 교육부로부터 전국 최초의 특성화고등학교로 지정을 받았다. 당시 학과를 보면, 각 세라믹아트디자인과, 인테리어디자인과, 영상출판디자인과, 그래픽디자인과로 구성되는데, 지금으로 치자면 세라믹, 디자인, 그리고 사진영상학과에 해당한다. 디자인에 방점을 찍으면서 디자인 중심으로 특성화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원래 디자인이란 말은 소묘를 의미하는 데생과 함께 디세뇨(disegno)라는 같은 뿌리 말에서 왔다. 원래 본격적인 작품 제작을 위한 밑그림과 같은 기초를 의미했지만, 이후 창작 주체의 상상력과 같은 상대적으로 더 창조적인 동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대 재생산되었다(참고로 상징주의와 낭만주의를 연 보들레르는 상상력을 예술을 위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들었다). 그리고 2010년에 현재의 위치(부산광역시 남구 동명로 169번길 38)로 학교를 이전했고, 2013년에는 예술특목고(공립 특수목적 고등학교)로 지정받았으며, 2014년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로 교명을 최종 변경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운영 학과를 보면 각 도예과, 인테리어학과, 영상미디어학과, 그리고 그래픽학과와 같은 네 개의 디자인 학과로 구성돼 있으며, 여기에 각 평면 조형실(회화), 입체 조형실(조소 1), 조형 실습실(조소 2), 물레 성형 실습실(도자 1), 도자 장식 실습실(도자 2), 스튜디오 촬영 실습실(사진영상 1), 사진 현장 실습실(사진영상 2), 그리고 전시장 역할을 겸하는 상설 전시 판매장 등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편재를 중심으로 점차 다중화하고 다원화되는, 그리고 제도권 예술과 생활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예술을 생활 속으로, 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되는) 지금 예술계의 생리 혹은 생태학을 반영하는 움직임을 수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조형예술(파인아트)과 공예, 산업디자인과 공업디자인 중심으로 특화된 학교인 만큼 그동안 각종 기능대회와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 눈에 띄는 이력이 있어서 주목된다. 1979년 12월 새마을 사업 우수 학교로 대통령 표창 수상을 했으며, 2000년 1월에는 일본 요나고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체결했고, 2002년에는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과 무시험 추천 입학 협약을 맺은 것이 그렇다. 사실상 미술대학 수준의 학과며 편재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동명대학교, 동서대학교, 동부산대학교 등 부산 지역 대학들과의 연계 교육도 활발한 편이어서 지역교육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점이 인정된다. 여기에 특이한 경우로서, 2003년 4월 부산 최초로 펜싱부(여자 사브르)를 창단했으며,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사브르 종목에서 제31회 졸업생인 김지연이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학교의 설립 취지를 보면 예술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아마도 한국의 바우하우스(추상미술의 새 장을 연 칸딘스키와 폴 클레 같은 작가들이 당시 교수로 참여하기도 했던)를 지향하는 한편, 독일의 교육이념인 마이스터(장인, 전문가) 양성이라는 목적에도 부합한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여기에 아트앤크라프트(예술과 공예) 운동에도 부합하는 면이 있고, 비록 조선의 예술을 슬프고 한스러운 것으로 정의 한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조선의 공예(특히 민화와 분청사기)를 최고의 예술로 상찬했던 야나기 무네요시의 예술 관념에도 부응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학교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을 지향하고 있는데, 동시대 예술계의 생리며 생태학에도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원래 예술가는 장인(artisan)을 의미했고, 예술가(artiste)를 의미했고, 그리고 여기에 기술자(techne)를 의미했다. 처음에는 이 모두를 의미했지만, 이후 점차 그 기능이 분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므로 어쩌면 예술에 관한 한, 그 기능이 분화되기 이전의 전인적인 인격체, 기의 그러므로 기와 예의 일치를 지향한다고 해도 좋다. 플라톤은 예술이 이데아(idea)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이도스(eidos)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헤겔은 이념이 감각적으로 현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미술관이라고도 했다. 하나같이 창작 이전의 이념 자체, 형상 자체, 상상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게 이번 전시가 예술의 원인으로서 이념을 훈련하고 형상을 육성하는, 그리고 상상력을 키우는 예술가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실을, 그리고 그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