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의병의 시초’ 유성의병…대전의 독립운동사 한자리에 / KBS 2023.02.28.
[리포트] 최초의 을미의병으로 평가받고 있는 '유성의병' 당시는 공주부 소속, 현재 대전 유성의 진잠과 회덕지역 유생들이 중심이 됐습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전에서 유림학파를 이끌었던 연제 송병선 선생과 동생 송병순 선생은 자결로 대의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일본이 강제적으로 지운 빚을 청산하고자 1907년 촉발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지역민 5명이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리며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전국적인 3 1운동 기세 속에 유성장터와 인동장터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수감자가 폭증하자 1919년 5월 '대전감옥소'가 신설돼 일제에 항거한 수많은 애국지사가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한 뒤에는 일본인과의 차별 대우와 경제적 착취에 저항한 노동운동과 농민, 청년, 학생 등 각계각층의 사회운동으로 항일 의지를 키웠습니다 [유광현/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 "전통적으로 유학 사상이 강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위정척사라든지 그런 사상이 강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개화라든지 계몽운동으로 발전이 되는 양상(입니다 )"] 의병과 애국계몽, 만세운동에 앞장서 애국지사로 인정받은 대전 출신 인물만 60여 명에 이릅니다 [이재우/대전시 선화동 :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위치에서(독립운동) 활동을 해왔다는 거, 나라를 위한 고민을 많이 하고 실천으로 옮겼다는 부분이 굉장히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 일제에 항거해 반세기 넘게 이어진 선조들의 독립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이번 전시는 5월 31일까지 계속됩니다 KBS 뉴스 홍정표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