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마주침이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다
낯선 마주침이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다 예기치 못한 마주침이 잦을수록 한 곳에 치우침 없이 색다른 깨우침을 일으키는 비결입니다. 깨우침이 생기면 뉘우침도 생기고 누군가에게 또 다른 깨우침을 전해주는 가르침의 노하우도 생깁니다. 가르침에 감동받는 누군가는 사무침이 생기고 한 가지 놀라운 깨달음에 파묻히기도 합니다. 정문일침의 지혜는 결국 낯선 것과의 우연한 마주침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만나는 색다른 사람, 내가 자주 가는 낯선 곳에서의 체험, 내가 읽는 남다른 책이 나를 이전과 다른 나로 바꿔주는 마주침입니다. 낯선 사람과의 마주침 낯선 곳과의 마주침, 낯선 책과의 마주침이 나를 이전과 다른 깨달음으로 깨우쳐줍니다. 마주침이 없으면 깨우침도 없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정문일침의 교훈도 없어집니다. 마주침이 없는 사람은 늘 어제의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오늘의 생각으로 내일도 기다립니다. --------------------------------------------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시간이 흐른다. 막다른 골목에 가보고 나서 현실이 가로막은 가능성의 문을 침묵과 고독으로 열어보았다.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끄트머리’의 지혜를 배운다. ‘끝’에 ‘머리’가 있는 ‘끄트머리’는 ‘책상머리’의 관념적 사유를 언제나 능가한다. 궁지에 몰렸을 때 다시 경지에 이르는 방법은 어떻게 하든 실행 속에서 태어난다. 어디론가 사라진 내 생각의 결정체가 송두리째 날아갔지만 사유의 뿌리는 여전히 내 몸에 뿌리박고 있다. 깊게 뻗은 사유의 뿌리를 더듬어 줄기차게 줄기를 뻗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가지를 치기에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낯선 사건 속에 담긴 사연을 뒤로 하고 그 사연이 낳은 깨우침의 사유가 전혀 다른 차원의 뿌리를 내리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진짜 미래는 Data가 끌고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 Big Data에 의존했던 사유의 허망함, Data 분석과 해석이 낳은 통찰의 뿌리에서 이제 과감하게 벗어나려는 뿌리침을 토대로 새로운 깨우침을 찾는다. 산만한 Data보다 간절히 원하는 세상과 Date하면서 다시 비상하는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본다! 비루한 현실과 너그러운 언어 사이, 반성 없는 세상과 명석한 판단력 사이, 우둔한 사건과 예기치 못한 안타까움 사이에서 누군가 차단해버린 가능성의 불씨를 서글픔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본다. 메마른 삶에 언어를 던져 힘겹게 낚아 올린 문장이 여전히 허공을 떠돌지만 뜨거운 여름의 시작과 함께 내 사유의 불길도 다시 치솟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