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정조를 놓고 조식과 이황이 대립하게 만든 진주 이 소사 간통사건
#조선궁중비사 #조식 #이황 #이정 #이_소사 #간통 #기대승 #선조 대사헌을 지낸 이인형의 손녀 이씨는 진주 명문가 출신인 하종악에게 후처로 시집을 갔는데 하종악은 진사시까지 급제했으나 상처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종악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부모의 뜻에 따라 혼례를 올린 이씨는 정성껏 중년의 남편을 받들었으나 하종악은 그녀가 28세가 되었을 때 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이씨는 청상과부로 인고의 세월을 살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세수도 하지 않고 슬퍼하면서 수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절은 고독과의 싸움으로 남자를 쳐다봐서도 안 되고 남자를 생각해서도 안 되며 집에서 부리는 남자 종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말고 말도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28세의 여인이 수절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사대부로서 쟁쟁한 명성을 얻고 있는 시집과 친정을 위해서, 개가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여인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고통이 남편이 죽은 뒤의 수절이었는데 고을마다 하나씩 있는 열녀문이나 열녀비는 절개를 지킨 상징으로 칭송을 받았지만 당사자에게는 사무치는 고통이었습니다 이 소사를 모함하는 전처의 딸 이 소사는 남자 종에게 지시를 내릴 때는 침모나 유모 같은 여자 종을 통할 정도로 몸가짐을 단정하게 했지만 그렇게 수절하면서 지낼 때 전처의 딸 하씨가 이 소사를 모함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 계모가 절개를 지키지 않고 음란한 행실을 하고 있다 우리 하씨 집안이 어떤 가문인데 음란한 짓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