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말씀묵상] 첫째날. 한 알의 씨알이 죽어야(창22:6-14, 요12:20-26)
글, 목소리: 한문덕 목사 반주: 박지형 집사 제목: 한 알의 씨알이 죽어야 본문: 창세기 22장 6-14절, 요한복음 12장 20-26절 오늘부터 우리는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로 매일 아침 주님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작년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 해 고난주간은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의 문제들, 삶의 의미를 살피고 싶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는 사랑과 배신, 신뢰와 모욕, 절망과 갱생의 드라마라고 불릴 수 있겠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우리 삶에서도 계속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인생의 깊은 의미를 묵상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온 그리스 사람 몇이 예수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이방인들 중에 유대교에 관심이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이방인의 뜰에서 예배할 수 있었는데, 아마 이들 중 일부가 예수님을 찾은 것 같습니다 유대 전통에서 종말이 되면 모든 이방 사람들이 유대로 몰려와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종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때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시는 예수님께 이방인들이 찾아온다는 것이 하나의 상징입니다 즉 예수님의 기적과 표징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 알의 씨알이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입니다 고대인들은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서 죽어야 수많은 새 낟알들을 내는 줄기가 싱싱하게 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알의 씨알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보이지만 실생활에서 바로 내가 그러한 씨알이 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 영생의 길은 반드시 이런 과정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희생을 몸소 당하셨고, 그것도 매우 자발적으로 그러하셨습니다 그런데 꼭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이러한 희생이 필요한 것일까요? 십자가의 그 참혹한 죽음이 필요한 것일까요?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다 해도 그 과정에서 그 끔찍한 고통을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일까요? 나에게 이런 고통스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는 삶의 의미를 계속 지닐 수 있을까요?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희생양의 운명을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며 이삭의 ‘희생’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예수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는 희생이라는 주제에 관해 깊은 물음을 제기합니다 이삭을 바친 이야기는 유대교가 우리에게 전해준 유산 가운데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인간이 겪는 고통을 가장 잘 드러낸 이야기입니다 오늘 창세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칼을 들어 아들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모든 판단, 가족 구성원에 대한 책임의식, 윤리 체계를 거스릅니다 그리고 이 명령에서는 어떤 ‘종교적’인 의미도 찾기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읽으면 아동 학대나 맹목적인 신앙의 한 예로 읽혀집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그렇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이야기의 핵심은 모든 인간적인 의미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이야기는 인간이 붙들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이미지, 하나님 상(像)을 깨뜨립니다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상식이라 믿는 것 속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협상하려는 생각, 하나님과 흥정을 벌이려는 생각,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생각을 부서뜨립니다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고,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하나님을 생각했던 우리의 모든 사유가 산산조각 납니다 우리가 삶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부서뜨림으로써 이 이야기는 우상에 맞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법을 어기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뒤 우리를 갖고 노는 것만 같은 하나님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사랑과 정의에 대한 우리의 모든 관념은 흔들립니다 이삭을 바치라 명하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님,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님 상(像)을 찢거나 박살내 버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충격으로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혼미한 채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모든 생각들은 말끔히 씻겨나가고 제거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통제의 손에서 벗어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안과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병을 내면에 간직한 채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 때서야 등장하는 것이 제 3의 인물인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 아직 잘 모릅니다 왜 그렇게 끔찍한 죽음이 필요했는지, 왜 우리는 예수를 따라 그런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 우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곳, 우리의 이해가 따라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런 일들이 왜 이 세상에 가득한 지, 하나님은 이런 폭력과 고통을 왜 허락하시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편 바로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무의미와 고통의 세계를 넘어서도록 우리를 밀어붙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희생의 자리, 십자가는 모든 우상숭배가 심판을 받는 곳이며, 모든 인간적 의미가 무너지지만 새로운 의미가 다시 살아나며, 사랑이 새롭게 태어나는 곳을 향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바치는 문제,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물음은 이론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그런 일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고, 그 때는 우리가 스스로 의미를 만들거나 무엇을 해보려는 모든 시도를 넘어서서 그분의 손길이 그저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인간의 통제가 무너지는 곳에 참된 희생, 십자가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만든 의미는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변치 않는 부드러운 그 손길이 우리를 매만지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맞이한 이 순간, 그리고 부활의 빛이 움트기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죽은 한 알의 씨알처럼 깊은 하나님의 뜻과 의미가 많은 열매를 통해 되살아 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속적으로 신비를 기다리고 하나님을 향해 묵묵히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 고난 주간 첫째날 기도 제목 아침 기도 1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한낮 기도 2 우리 생명사랑 공동체가 더욱 말씀에 뿌리 내려 질적으로 성숙하고 부흥하도록 저녁 기도 3 코로나 방역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