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행색의 인생에서
음성이 좋고 소리가 좋고 사운드만으로 표현하는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망생이 된 뒤에 팟캐스트, 오디오북과 오디오 드라마도 많이 들었구요 다만 저는 청각적인 것보다 시각적인 미를 더 좋아했습니다 꽃과 바다, 산, 하늘, 어떨 땐 아이들과 사람들… 간혹 여자의 가슴이라던가(농담이 아니라, 남근을 보고는 느껴지지 않는 아름다움입니다 당연) 그럼에도 소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음성만이 주는 진실성, 호소력 그래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어딜 가던 절벽앞에 서 있는 기분은 언제까지일까요 벽이 있다면 부시던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갈텐데, 제가 있는 곳은 마치 태평양의 외로운 작은 무인도에서 갈 길을 찾을 수조차 없는 절벽인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내로라 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처럼 감각이 있지도 않고 노력할 의지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길을 찾아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희망이 있고 가능성이 있는 나에 도취하고 중독되어 삐뚤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 같아 무력해집니다 딱히 노력하고 싶지는 않고 남들이 알아는 줬으면 좋겠어요 딱히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과는 좋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일이 그렇게 느껴집니다 인간성이란 건 사실 먹고 생존하기 위해 본능대로 먹이를 구하는 동물과 반대되는, 무력감과 비생산적인 것을 뜻하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전 인간성이 매우 뛰어난 것 같네요 인간은 일을 해야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매일 먹기 위해 노력하던 호모사피엔스라는 영장류가 진화해 현재 인간이 최종 진화형태라면 일을 하지 않는게 정상 아닌가요? 다만 생존을 위해 일을 하고 그것이 유전자에 “성취감”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면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