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찬송가 288 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찬양: 임윤희

새찬송가 288 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찬양: 임윤희

새찬송가 288 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찬양: 임윤희 (F J Crosby 작사 · P P Knapp 작곡) ; 이 찬송은 1873년 패니 크로스비가 작사한 그의 대표적인 찬송이다 어느 날 친구 피비 냅(Phoebe Palmer Knapp, 1839~1908) 부인이, 자기가 만든 멜로디를 피아노로 들려주며, 거기 맞춰 찬송을 작사해 달라 요청을 하여 즉석에서 작사한 것인데,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작사자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는 우리 한국 찬송가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채택된 위대한 찬송 작가다 그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주 푸트남의 사우스 이스트에서 태어나, 1915년2월 12일 아침에 코네티컷 주 브릿지포트에서 95세로 삶을 마쳤다 생후 6개월도 채 안 되던 갓난아기 시절, 감기로 인해 그의 눈언저리가 부어오르자, 약사는 겨자를 갈아서 눈에다 바르라고 처방하였다 그 집 가정부는 겨자를 갈아 뜨겁게 하여 눈에 발라주었으며, 이로 인해 크로스비는 맹인이 되고 말았다 1847년 맹인학교를 마친 크로스비는 그 학교의 교사가 되어 11년간 영문법과 수사학, 라틴어 미국 역사 등을 가르쳤다 30세가 되던 1850년 11월 20일, 크로스비는, 어느 부흥 집회에서 온 회중이 아이자크 왓츠의 찬송「웬 말인가 날 위하여」를 부를 때 함께 부르다가, 5절「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Here, Lord, I give myself away; 'Tis all that I can do' 란 구절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예수를 영접하기로 결심한 분들은 앞으로 나오시오」하는 초청에 응하여, 참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평생 왓츠와 같은 찬송가 작사자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크로스비는 나이 38세이던 1858년 맹인 음악가이며 같은 학교 교사이던 알렉산더 밴 앨스타인(Alexander Van Alstyne, ?~1902)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크로스비는 시인일 뿐만 아니라 복음찬송을 부르는 가수였으며, 위대한 복음 간증 사역자였다 그는 감리교회 평신도로 살면서 수많은 찬양시를 썼다 그는 자신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나의 육신의 눈을 멀게 하신 대신에, 나의 영의 눈을 열어주셨다 내가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찬양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찬양시를 쓰게 하셨음을 나는 믿는다 만약 내가 육신의 눈을 떠서 세상 것으로 장애를 받았더라면 내 어찌 그토록 많은 찬송시를 쓸 수 있었으랴…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기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노래하게 하련다 ” 평생 9,000편 가까운 찬송시를 써서「미국 찬송가의 어머니」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크로시비는, 살아 있을 당시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였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에 당시 대통령인 토머스 윌슨 (Thomas W Wilson, 1856~1924) 제28대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기까지 하였다 작곡자 피비 냅(Phoebe Palmer Knapp, 1839~1908) 여사는 1839년에 뉴욕에서 태어나, 1908년에 메인주 폴랜드 스프링스(Poland Springs, Maine)에서 별세하여, 뉴욕 브룩클린의 그린우드 묘지(Greenwood Cemetery)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 가까이에 토머스 헤이스팅스(Thomas Hastings)와 헨리 비처(Henry Beecher)의 무덤이 있다 피비 냅의 아버지는 감리교 부흥사인 월터 파머 박사(Dr Walter C Palmer)요, 어머니는 피비 워럴 파머(Phoebe Worrall Palmer)다 피비는 16살에 조셉 페어필드 냅(Joseph Fairfield Knapp)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회사 부사장이었다 그들 부부는 뉴욕시의 존스트리트감리교회의 진실한 성도로서, 패니 크로스비와 절친한 사이였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생명보험으로 많은 돈이 들어왔는데, 피비는 이 돈을 구제사업에 쓰고, 사보이호텔 안에 있는 자기 아파트에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고 계속 찬송을 작곡하여 500곡이 넘는 찬송곡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