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고개 신사(최희준) - 윤양로 테너 색소폰

진고개 신사(최희준) - 윤양로 테너 색소폰

#스카이 윈드(Sky Wind) 색소폰# 『진고개 신사』(작사 심영식, 작곡 김호길)는 1964년 HLKV 라디오 인기 연속방송극이었고 「최희준」이 불러 인기 곡으로 떠 올랐던 곡입니다. 1964년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이강원 감독에 김진규, 엄앵란, 한은진, 윤인자, 이경희, 최남현, 허장강, 구봉서, 김동원 등이 출연한 멜로 로맨스영화로 아카데미 극장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최희준」(1936~2018)은 해병대를 제대하고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3학년 때인 1957년 교내 축제에서 샹송(고엽)을 불러 입상한 뒤 1958년부터 미8군 무대에서 가요계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1960년 첫 작품인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로 인기를 끌기 시작 하여 스타 반열에 오릅니다. 1961년 부터 1967년까지 드라마와 영화 주제가인 "엄처시하"와 "맨발의 청춘", "하숙생", "광복20년", "팔도강산" 등을 연속 히트시키는 한편 1964년에는 대학 출신 가수인 박형준(고려대), 유주용(연세대),이한필(위키리, 서라벌 예대)와 함께 "포클로버스"를 조직해 활동하였습니다. 솔로 가수로도 『진고개 신사』, '종점', '길 잃은 철새', '이별의 프랫홈', '옛 이야기', '폭풍의 사나이', '빛과 그림자' 같은 많은 곡들을 인기 가요순위에 올리며 활약합니다. 이후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진고개"는 지금의 충무로 일대로 충무로 2가, 중국 대사관 뒷편 에서 세종호텔 뒷 길에 이르는 길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남산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의 고개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비가 오면 진흙밭으로 바뀌어 "진고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이곳을 지나 이르는 곳에 '남산골'(지금의 남산 한옥 마을 인근)이 있어 가난한 선비들이 주로 살았는데, 과거 준비를 하거나 낙방 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눌러 앉아 다음 과거를 준비하는 생원님(샌님)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이들은 "진고개"를 지나기도 좋고 오래신을 수 있어 주로 나막신을 신고 다녔기에 "딸깍발이"로 불렸죠. "진고개"(니현(泥峴)는 광무 10년(1906년, 순종 즉위년)에 언덕을 깎아내고 한국 최초의 하수 시설을 하여 우수(雨水)와 하수를 관리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행정 동이 바뀌며 본정 1정목부터 5정목까지 구성되며 '본정통'으로 불리었는데, 일본이 이곳에 일본 공사관을 세운 1885년 무렵부터 일본인 촌이 형성되어 본정(本町, 혼마찌)로 불리었기 때문입니다. 근처 '예장동'에는 일제 강점기 초기 총독부 관저와 일본군 헌병대 주둔지가 있었습니다. 일제(日帝)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이곳은 "진고개"로 명맥을 이었으며 지금도 몇몇 음식점의 상호(商戶)로 남아 있습니다. 해방 이후 일제(日帝)의 기(氣)를 잠재우기 위해 이곳을 '이순신 장군'의 아호(雅號)를 따서 "충무로(忠武路)"로 정했다가 지금은 도로 명 주소로 바뀌면서 '명동 길'로 바뀌었습니다. '을지로'도 청(淸)나라의 조차지(租借地)가 있던 곳으로 중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화교(華僑)학교와 중국 대사관이 이곳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중국의 기운을 상쇄하기 위해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에서 따와 정한 지명(地名)이었습니다. 우리의 지명(地名)에도 아픈 역사가 숨어있으며, 우리의 가요 에서도 아픈 역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의 얼굴은 별마다 새겨보는 별마다 새겨보는 아, 진고개 신사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언젠가 불러주던 그 여인의 노래를 소리 없이 불러보는 소리 없이 불러보는 아, 진고개 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