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전선 44화 꿈을 뒤로하고 학도병이 되기까지! #625전쟁 #한국전쟁 #라디오드라마 #종군기자 #전쟁 #마거릿히긴스 #학도병 #포항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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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70주년 특별기획 라디오드라마 낙동강 전선 제 44화 꿈을 뒤로하고 학도병이 되기까지! 1950년 8월 16일 이날 미 공군 폭격의 실질적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인민군 주력부대는 이미 낙동강을 건너 한국군과 근접 대치 중이었기 때문에 치명적 타격은 피할 수 있었다. 이날 경북 왜관의 공중 폭격은 오히려 심리적 효과를 가져왔다. 융단폭격 소식은 한국군 병사들의 사기를 치솟게 했다. 그러나 폭격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방어선 곳곳은 돌파되느냐 고수하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한편 도쿄 프레스 클럽 주변에서 인천상륙작전은, 개시 몇 주 전부터 떠돌던 ‘누구나 다 아는 작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장교들은 취재요건에 대해서만은 상의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미 해군은, 수송함에 탑승하려는 여 기자의 요구를 끔찍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마거릿 히긴스기자는 미 해군 함정에 올라 취재를 시작하고... 미군은 한국전쟁 동안 줄곧 피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남북으로 나눠진 그들은, 외모만으로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인민군은 이 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미군이 피난민마저 엄격하게 수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피난 가던 재영이네 가족을 막사로 데리고 온 미군병사 역시 김재영을 심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