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74회 임진왜란 중 ‘항복한 일본인’ 1만명이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74회 임진왜란 중 ‘항복한 일본인’ 1만명이었다

일본인 출신으로 귀화한 인물 가운데는 사야가(沙也加·김충선)이 첫손으로 꼽힌다  사야가는 1592년 4월15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이끄는 왜군 제2진의 선봉을 맡아 부산포에 상륙했다가 곧바로 부하들과 함께 귀순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ㄴ〈모하당 문집〉을 보면 단순한 항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정 전부터 “의롭지 못한 전쟁에 나섰지만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에 가서 동방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귀화한다”고 밝혔다  조선 조정은 그런 사야가를 가상하게 여겨 자헌대부(정 2품)를 제수했다 그러면서 김해 김씨의 성를 내리고, 충성스럽고 착하다는 뜻의 ‘충선(忠善)’이란 이름을 내렸다 김충선의 본관은 임금이 하사한 성이라 해서 ‘사성(賜姓) 김해 김씨’라 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무공을 세웠고, 조총과 화포를 다뤘으며, 화약제조법을 전수했다 또 이괄의 난(1624년)과 병자호란(1636년) 때도 공을 세웠다 김충선이 임진왜란·이괄의 난(갑자년)·병자호란 등에서 모두 공을 세웠다고 해서 ‘임갑병 3난의 공신’이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블로그 경향신문 홈페이지 경향신문 페이스북 경향신문 트위터 스포츠경향 홈페이지 스포츠경향 페이스북 스포츠경향 트위터